조선시대의 묘지 싸움, 산송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설 연휴가 후딱 지나갔다. 우리 집안에도 추풍령 산속에 선산(先山)이 있지만 찾은 지 좀 되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억지로라도 이끌려 성묘를 했지만, 아버지를 수도권 인근 납골당에 모셨고, 게다가 요즘은 지역 산림조합이란 곳에서 벌초 대행서비스까지 해주니 점점 더 격조해진다. 장손인 내 아들은 일찌감치 ‘제사 불이행’을 선언했는데, 아들 대에 가기도 전에 어머니의 결단(!)으로 몇년 전부터 제사는 추도식으로 대체되었다. 정말 ‘장기 조선시대’가 저물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 후반 산송(山訟)이란 게 있었다. 산에 있는 묘지를 둘러싼 싸움이다. 자기 집안 묘역에 남이 묘지를 쓸 때(투장偸葬) 관아에 소송을 거는 것이다. 태곳적부터 있었던 건 아니고 조상과 문중을 중시하는 종법질서가 조선사회를 장악해간 16세기 후반부터 시작해 18, 19세기에 집중적으로 발생되었다(이하 김경숙 <조선의 묘지소송>). 1727년 영조가 “요사이 상언한 것을 보건대 산송이 10의 8, 9에 달한다”고 개탄했다 하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겠다. 삼국·고려시대에도 중국·일본에도 없던 일이라 하니 조선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회현상이겠다.

18세기 후반 영조 때 고려 재상 윤관(尹瓘)과 조선 재상 심지원(沈之源)의 자손들이 묘역을 둘러싸고 소송전에 돌입했다. 군수, 관찰사 차원에서도 해결되지 못하자 급기야 왕이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두 집안은 왕의 처분도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 왕에게 상언과 격쟁을 감행했다. 화가 난 영조는 양 집안의 대표자들을 유배 보냈고, 그중 한 명은 귀양길에서 죽었다. 이쯤 되면 드라마가 끝날 법도 한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툼은 계속되었고 그에 종지부가 찍힌 것은, 무려 2010년이란다(윤씨 가문에서 이장 부지를 제공하고 심씨 가문이 심지원의 묘를 이장하는 것으로 마무리).

윤관 장군은 고려중기인 1111년에 세상을 떴는데, 그 후 묘의 위치가 묘연해졌다.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조상숭배도 문중의식도 미약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600년도 더 지난 자손들에게는 그것이 새삼 중요해졌다. 어찌어찌해서 그 위치를 비정(比定)했지만 그곳에 다른 집안의 묘가 들어서 있으니 싸움이 난 것이다. 윤씨 가문뿐 아니라 당시 새롭게 형성되던 많은 양반가문들이 이런 일에 나섰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명문가’는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생각해보면 별일도 아닌 일을 갖고 두 집안은 250년 동안 싸웠다. 별로 중요하지 않던 일이 목숨을 걸 정도로 절박한 사안이 되고, 그것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 그것이 역사의 변화다. 저 두 가문의 오랜 송사가 2010년이라는, 관습 면에서 ‘장기 조선시대’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해결되었다는 점은 퍽 시사적이다.

산송에는 심지어 여성들도 참전했다. 충청도 공주에 살던 정조이의 남편은 산송에 휘말려 끙끙 앓다가 죽었다. 관아의 이장명령을 투장자가 몇번이고 어기며 버티자 정조이는 묘지가 있는 금산까지 50㎞ 길을 왕래하며 몇년에 걸쳐 소송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사례에서도 관아의 공권력 동원에도 불구하고 투장자는 차일피일 이장을 몇년이나 미뤘다.

산송 얘기를 읽다보니 의문도 생겼다. 영조는 두 집안이 각각 묘를 수호하여 다투지 말라고 했지만, 두 집안은 주먹다짐까지 하면서 임금의 중재를 무시했다. 1865년의 다른 산송에서는 이장을 거부하는 묘를 파헤치기 위해 관리가 파견되었지만, 투장자 측이 주먹으로 대들고 괭이, 삽 같은 장비까지 빼앗아 좌절됐다.(김경숙 <조선후기 산송과 여성의 행위성>) 당시 조선인들이 가장 중시하던 조상 묘 문제임을 감안하더라도 공권력의 존재감이 이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 것은 ‘조선사회에서의 국가권력’을 생각할 때 하나의 단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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