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내고 더 받기’가 말하지 않는 것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연금개혁 공론화위 시민대표단 500명이 선정되었다. 이들은 4월에 두 번의 숙의를 거친 뒤 최종 설문조사로 연금개혁안을 제시한다. 여러 의제 중 단연 쟁점은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다. 현재는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인데, 개혁안으로 ‘더 내고 더 받기’(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와 ‘더 내고 그대로 받기’(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0%) 중 하나를 선택한다.

언뜻 답은 뻔해 보인다. ‘더 내고 더 받기’가 책임과 권리를 함께 구현하니 공평하지 않은가. 기금소진연도는 7년 늦추고 연금액은 많아져서 지속 가능성과 보장성을 동시에 개선하니 말이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앞으로 시민대표단은 ‘더 내고 더 받는’ 방안(‘50%안’)이 말하지 않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선 지속 가능성을 보자.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현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에서 받는 만큼 낸다면 수지균형 보험료율이 약 20%이다. 이후 수급개시연령을 올리고 기금수익을 늘릴 수 있으면 필요 보험료율이 15% 선까지 내려갈 수 있다. 결국 수지를 맞추려면 소득대체율 10%당 보험료율 4~5%가 요구된다. 그런데 50%안은 소득대체율을 10% 인상하면서 보험료율은 4% 올린다. 후하게 계산해도, 더 받는 몫만큼만 더 내는 개편안이다. 시민대표단은 질문해야 한다. 그러면 현재 국민연금이 지닌 재정불안정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냥 방치해도 되는 건가요?

궁금함이 생길 수 있다. 기금소진연도가 늦춰지므로 지속 가능성이 개선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국민연금 재정구조가 주는 착시에 유의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내는 기간과 급여를 받는 기간이 완전히 구분된 제도이다. 보험료를 내는 시기에 급여도 받는 건강보험, 고용보험과는 재정구조가 다르다. 국민연금에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동시에 올리면 보험료율 인상분은 곧바로 수입을 늘리지만 소득대체율 인상분은 가입자의 계좌에서만 계산되다가 은퇴 후에 비로소 지출로 구현된다. 국민연금 재정에서 보험료율 인상은 전반전에, 소득대체율 인상은 후반전에 재정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 그런데 기금소진연도는 재정계산 70년 기간의 중간 지점에 있다. 시민대표단은 물어야 한다. 50%안으로 가면 기금 소진 이후 재정은 어떻게 되는지. 당시 급여 지출을 보험료로만 충당할 경우 요구되는 부과방식 보험료율이 소득대체율 40%에서는 최대 35%이고 소득대체율 50%에서는 43%까지 높아진다. 지금 우리가 내는 9% 보험료율의 5배에 육박하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수치이다. 지금 청년들이 수급자 지위에 있을 그 기간의 재정 상황을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따져야 한다.

그래도 공적연금이므로 보장성에 우선 충실하자고 생각할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의 급여로는 노후생활이 어려우니 소득대체율이라도 올려야 한다고. 그렇다.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 단, 시야를 국민연금에서 전체 법정 의무연금으로 넓힐 때 가능한 일이다. 예전에는 국민연금 하나뿐이었지만 이제는 기초연금, 퇴직연금이 시행되므로, 노후설계도 ‘연금 삼총사’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국민연금 급여액은 소득대체율에 가입기간을 곱해서 정해진다. 현재로선 수지불균형이 너무 커서 소득대체율 인상이 어려운 게 냉정한 현실이다. 대신 가입기간 확대에 나서자. 국민연금은 외국에 비해 법정 의무가입기간이 만 59세로 짧고, 불안정 취업자들은 종종 가입 단절을 겪는다. 앞으로 의무가입연령을 상향하고 다양한 연금크레딧, 보험료 지원을 보강하여 가입기간을 늘리는 실질 보장성에 집중해야 한다. 기초연금은 작년 665만명의 노인에게 매월 약 30만원을 지급하며 총 22조5000억원을 지출하였다. 같은 해 급여지출 36조2000억원인 국민연금에 비해 결코 작은 제도가 아니다. 앞으로 하위계층 노인에게 누진적으로 더 지급하여 빈곤노인의 생활 개선에 힘써야 한다. 고용주가 전액 납부하는 퇴직연금은 2022년 기여액이 57조원으로 같은 해 국민연금에서 노사와 지역가입자가 낸 보험료 56조원보다 많고 이후 더욱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연금 선진국처럼 퇴직연금이 연금으로 역할을 하도록 키워가야 한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더 내고 더 받기’와 ‘더 내고 그대로 받기’ 중 어느 것이 지속 가능성과 보장성을 함께 구현할까? 전자는 국민연금기금 소진 이후에 오히려 재정을 더 어렵게 만들고 보장성에선 시야를 국민연금으로 좁혀 소모적 논쟁만 불러온다. 후자는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추진하면서 연금삼총사로 보장성을 전향적으로 재설계한다. 시민대표단의 진지한 숙의를 기대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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