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뒤숭숭한 연구실의 봄

송병찬 한국연구재단 연구위원

정부는 작년 8월 말, 2024년 예산안과 2027년까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했다. 2024년 예산은 전년 대비 2.8% 증가한 656조9000억원으로, 11개 분야 중 연구·개발(R&D), 교육, 일반·지방행정의 3개 분야 예산이 감소했다. 특히, 교육이 6.9%, 일반·지방행정이 0.8% 감소한 것에 비해 R&D는 16.6%(5조2000억원) 감소해 그 폭이 가장 컸다. 연말에 국회 예산 심의를 거쳐 약 6000억원이 회복되어 최종적으로는 26조5000억원, 전년 대비 14.8% 삭감되었다. 계획에 따르면 2027년이 되어서야 작년과 비슷한 수준인 31조6000억원이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정부는 내년부터 R&D 예산을 대폭 증액하겠다고 밝혔지만,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뛰어넘어 단기간에 예전 수준으로 복원하겠다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정부는 대학, 정부출연연구소, 기업 등에 본격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꾸준히 관련 예산을 늘려왔다. 작년 2월 발표된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에서도 매년 정부 총지출의 5%씩 R&D 예산을 증액해서 5년간 17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채 1년이 되지 않아 전례 없이 큰 폭의 예산 삭감이 이뤄졌다. 이러한 상황이니 연구현장에서 연구자와 학생들이 느끼는 혼란과 허탈감이 어느 정도일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학의 경우 봄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연구실의 분위기는 예년과 다르다. 연구비가 10~20%씩 일괄 삭감된 연구실은 부족한 연구비를 메우기 위해 신규과제를 찾아 예정에 없던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느라 분주하다. 연구비가 70~80%씩 삭감되거나 아예 과제가 중단된 연구실에서는 연구원과 학생, 행정인력의 인건비 삭감을 통보해야 하고 누군가는 계약을 연장하지 못해 떠나야 한다. 정부출연연구소나 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학생연구원의 경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학생과는 거리가 있다. 친구들이 석사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할 때 연구자의 꿈을 품고 적은 월급에 만족하며 연구실에서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린 가장들이다. 연구환경이 좋다는 해외 대학으로 나가지 않고 지도교수 옆에 남아 화학약품들로 인해 쾨쾨하고 위험한 실험도구들이 있는 연구실로 매일 출근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인들이다. 그들에게 학생인건비는 용돈이 아니라 생계를 꾸려가는 식비이자 주거비다.

연구자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대를 이어서 연구를 이어갈 새로운 석·박사생을 받을 수 없고, 아직 숙련되지 못한 과정생들을 조기에 졸업시켜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수행 중이던 과제의 1단계 연구결과가 예상보다 좋아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고, 그래서 2단계 연구에서는 연구비가 많이 드는 임상시험을 통해 꼭 좋은 성과를 내고 싶었다는 연구자에게 할 수 있는 얘기는 많지 않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과제를 계속하실 것인지 확인하고 확인이 되면 과제를 중단하거나 연구목표를 변경하는 행정절차를 설명드리는 것이 전부다.

현장에서는 학문 후속세대인 젊은 연구자와 학생들의 이탈을 막고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의 기초연구만이라도 추경을 통해 계속과제 예산을 복구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차제에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로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늘어나고 있다. 연구자들이 마음 놓고 도전적인 연구에 뛰어들어 세계를 놀라게 할 연구성과를 창출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해외 연구기관과 지속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해 실질적인 공동연구를 추진하자면 안정적인 연구환경 조성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봄이 다 가기 전에, 연구를 사랑하고 연구자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송병찬 한국연구재단 연구위원

송병찬 한국연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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