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판 거래’ 부인하고 책임 회피한 양승태의 후안무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임 당시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의 보고서가 나온 지 1주일 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1일 기자회견에서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고 밝혔다.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한 법관을 뒷조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특정 성향을 가진 법관에게 불이익을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 의혹을 거듭 부인한 그는 “이 두 가지는 제가 양보할 수 없는 한계점”이라고 했다. 본인이 아니라면 아닌 건가. 어처구니없는 권위주의적 인식이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했지만 자성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인사가 6년간이나 사법부 수장을 지냈다니 기막힐 따름이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은 검찰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자 이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회견은 30분가량 이어졌지만 한 문장으로 충분하다. ‘의혹은 부인하고 책임은 미룬다.’ 그는 전반적으로 부인하면서, 구체적 사안을 질문하면 교묘히 피해갔다. 특별조사단 조사를 거부한 이유를 묻자 “내가 가야 되느냐. 사법부 수장이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회동 직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현안 관련 말씀자료’ 등에 대해선 “그런 걸 공부하듯 외우고 있었겠느냐”고 했다. 문건에는 KTX 해고승무원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긴급조치 피해자 배상청구 사건 등이 청와대에 협력한 사례로 적시돼 있다.

회견 내내 양 전 대법원장은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대법원 재판의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대법원 재판에 의구심을 품었다면 그런 의구심은 거두어달라”고 말했다. 시민은 주권자이자 법률소비자로서 정당하고 합리적인 의심을 품고 구체적인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제대로 반박하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믿어달라는 후안무치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했나. 시민을 우중(愚衆)으로 여기는 인식은 재판이 왜곡됐을 것이란 의구심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 계속 침묵하는 게 차라리 나을 뻔했다.

오만하고 비겁한 양 전 대법원장의 회견으로 시민의 분노는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현직 판사(차성안)도 형사소송법 규정을 들어 “대법원장이든, 법원행정처장이든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할’ 의무를 지는 공무원”이라며 대법원의 형사고발을 촉구하고 있는 터다. 조속한 후속조치를 통해 진실을 규명함으로써 미증유의 혼란을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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