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첫 입건 검사’도 기소 못한 공수처, 존재 이유 입증해야

현직 검사로선 처음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입건됐던 이규원 검사가 지난 28일 재판에 회부됐다. 하지만 기소권을 행사한 곳은 공수처가 아닌 검찰이다. 지난 3월 검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공수처가 9개월 만에 다시 검찰로 넘겼기 때문이다. 기소권을 독점해온 검찰을 견제하고 판검사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창설된 공수처가 ‘입건 1호 검사’의 기소를 포기했으니 존재 의미를 스스로 부정한 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2018~2019년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일한 이규원 검사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재조사 과정에서 건설업자 윤중천씨 등의 면담 보고서를 작성하며 윤씨 등이 말하지 않은 내용을 허위 기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보고서에는 윤갑근 전 고검장이 윤씨와 골프·식사를 함께한 정황이 있고, 곽상도 전 의원 등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김 전 차관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포함됐다. 윤 전 고검장 등은 내용이 허위라며 고소했고, 검찰이 2년여 만에 이 검사를 기소한 것이다. 공수처는 검찰에서 넘겨받은 사건을 다시 이첩하며 ‘검찰이 수사하던 사건과 합쳐 한꺼번에 기소하는 게 옳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그렇다면 사건을 넘겨받을 때 왜 곧바로 재이첩하지 않고 아홉 달 동안 뭉갰나. 기소 후 공소유지를 할 자신이 없었던 것 아닌가.

공수처는 곧 첫돌을 맞는다. 하지만 자축할 상황이 못된다. 공수처는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피의자도 재판에 넘기지 못했다. 총력을 기울였던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에 대해 청구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 사무실 압수수색은 위법을 이유로 취소당했다. 미진한 것은 수사 성과만이 아니다. “국민 신뢰를 받는 인권친화적 수사기관”을 자임하던 공수처는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조사하며 공수처장 관용차를 내줘 ‘황제조사’ 논란에 휩싸였다. 과거 검경의 행태와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야당의 ‘공수처 폐지’ 주장은 섣부르다. 그러나 수사역량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경찰 파견 수사관 30여명이 곧 경찰로 복귀한다고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다. 공수처의 명칭과 ‘사명(使命)’만 빼고 모두 바꾸겠다는 각오로 조직을 쇄신하고 수사력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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