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펠로시 방한 둘러싼 ‘오락가락 외교’와 미숙한 대응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의회 하원의장(왼쪽)이 4일 국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한 뒤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의회 하원의장(왼쪽)이 4일 국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한 뒤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의회 하원의장이 대만에 이어 한국을 방문했다. 미 하원의장의 방한은 20년 만이다. 펠로시 의장은 4일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하고, 윤석열 대통령과는 전화로 인사를 나눴다.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직접 만나지 않은 것은 미·중 갈등 속 절충적 선택으로 볼 만하다. 일관성을 갖고 신중하게 준비했다면, 무난하게 마무리될 수 있는 외교 행사였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대통령 면담 여부 및 의전 문제 등을 놓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노출해 비판을 자초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면담을 놓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지난 3일 면담이 추진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대통령실에선 ‘윤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순방국 정상들은 모두 펠로시를 면담했는데, 한국 대통령만 만나지 않으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3일 밤 윤 대통령 부부가 연극을 관람하고 출연진과 뒤풀이하는 사진이 공개되며 논란이 커졌다. 결국 4일 오전 대통령실은 두 사람이 전화 통화를 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사저에서 펠로시를 비롯한 미 의회 대표단과 40분간 통화를 했다. 국가안보실 관계자는 “지방 휴가 일정을 이유로 2주 전 이미 만나지 않기로 조율했고,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1주 전 정해졌다”며 중국을 의식해 면담이 불발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영범 홍보수석은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전화통화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혼선을 가중시킨 불필요한 메시지였다.

펠로시 일행의 공항 영접을 놓고 여야가 벌인 책임 공방도 볼썽사납다. 펠로시는 지난 3일 밤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한국 인사는 보이지 않는다. TV조선은 미대사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펠로시가 불쾌해했다’고 보도했고,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의장실의 의전 홀대’라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영접을 하지 않은 것을 정부 탓이라고 맞섰다. 국회와 대통령실 설명을 종합하면, 펠로시가 대만 방문 일정을 막판까지 함구하면서 한국 도착 시간도 확정이 늦어져 미국 측에서 영접에 대해 양해했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다. 그럼에도 여야가 국회 잘못이니 정부 잘못이니 논란을 벌이는 모습은 코미디에 가깝다.

북핵 능력이 증강되고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은 외교의 중요한 축이다. 그 내용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형식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동은 한국 외교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준 씁쓸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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