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몰도바 공화국

손제민 논설위원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이 지난 13일 몰도바 수도 키시나우 대통령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이 지난 13일 몰도바 수도 키시나우 대통령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 1년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나라가 있을까만, 몰도바 공화국만큼 직접 영향권하에 있는 곳도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로 둘러싸인 내륙국 몰도바는 경상남·북도만 한 면적에 약 260만명이 산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독립국이 됐다. 언어와 민족 구성, 역사적 뿌리가 루마니아에 가깝지만 상대적으로 더 큰 나라인 우크라이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친서방화로 점점 기울어온 몰도바의 내정은 ‘완충국’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라는 대국에 좌우되는 정도가 커질수록 불안정해진다. 지난 1년은 딱 그런 시간이었다.

미사일 오폭 공포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이고,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격감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다. 우크라이나 피란민 수십만명이 몰도바에 정착하며 부담이 더 커졌다. 경제학자 출신 마이아 산두 대통령은 몰도바의 유럽연합 가입을 서두르려 하지만, 친러 성향 야권은 경제난과 안보불안이 친서방 정책 탓이라며 그의 퇴진을 요구한다. 잇단 반정부 시위에 최근 총리가 물러났다. 급기야 산두 대통령은 러시아가 체제 전복을 시도한다고 주장했다. 산두는 지난 13일 러시아가 군사훈련을 받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인들을 사복으로 위장, 잠입시켜 대중을 선동하고 정부 건물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보기관의 이러한 계획을 입수해 몰도바 측에 알려줬다고 한다. 러시아는 그런 계획이 없다고 부인했다.

진실이 정확히 무언지는 알 수 없다. 몰도바 정부가 첩보를 과장했을 수도 있다. 다만 전쟁 장기화로 고전하는 러시아가 중립국인 몰도바의 친서방화를 막고, 동서 양쪽에서 우크라이나를 포위하려는 전략적 고려를 할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미국이 지난 세기 칠레, 쿠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의 체제 전복을 시도하거나 지원한 사례를 떠올려 보면 러시아의 그런 시도가 있었다 해도 놀랍지 않다. 그게 자국 이익을 위해 주변 작은 나라들을 장기판의 말처럼 부리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변치 않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운명은 그 나라 사람들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당위를 실행하는 것이 현실 국제정치 속에서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