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쿠데타 후 뺏은 ‘부일장학회’… 이름만 바꿔 50년 사유화

박홍두 기자

[긴급진단 정수장학회]① 어떻게 탄생했나

4·11 총선을 앞두고 여야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정수장학회’는 1958년 부일장학회로 출발했다. 부산지역 기업가 김지태씨(1982년 타계)가 설립한 부일장학회는 설립 후 4년 동안 모두 1만2364명에게 17억7000만환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김씨는 4·19 혁명 당시 부산일보에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군의 주검 사진을 싣게 하는 등 언론사주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1962년 김씨는 잘 운영해오던 부일장학회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넘겼다. 5·16 군사쿠데타로 박정희 육군 소장이 정권을 잡은 뒤였다.

박정희 소장이 대구 군수사령관을 할 때부터 친분이 있던 김씨는 한 해 전인 1961년 이른바 ‘5·16 혁명자금’을 조달해 줄 것을 요청받았지만 거절했다. 그 거절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김씨는 부인이 해외여행을 갔다가 사 온 반지와 카메라 한 대 때문에 밀수범으로 몰렸다. 중앙정보부 직원들은 해외출장 중이던 그를 귀국시키기 위해 가족을 압박했다.

1970년 11월30일 제7회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김지태 한국생사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자명 김지태 평전>은 이날 그의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970년 11월30일 제7회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김지태 한국생사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자명 김지태 평전>은 이날 그의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김씨는 관세법 위반, 부정축재 혐의 등 9개 혐의가 덧씌워져 곧바로 군검찰에 의해 구속돼 1962년 5월24일 7년의 징역형을 구형받았다. 중앙정보부는 당시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수사만 하게 돼 있었지만 권한남용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구형 이튿날 김씨는 재산포기 각서에 사인했다. 손목은 수갑으로 묶인 채였다. 그가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넘긴 재산은 부일장학회가 소유한 부산 서면의 토지 10만147평을 포함해 부산일보·부산문화방송·한국문화방송 주식 100% 등이었다. 2005년 언론노조는 이 재산이 주식 발행을 하지 않던 당시 일부 언론사의 가치까지 따지면 지금 시세로는 10조원 이상이라고 추산했다.

김씨는 1976년에 출간한 자서전 <나의 이력서>에서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구속된 조건 아래 그런 서류를 작성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니, 석방된 연후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버텼으나 막무가내로 어느 날 작성해 온 각종 양도서에 강제로 날인이 이뤄졌다.”

아들 김영구씨도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인감도장을 들고 가자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법무관실에서 아버지가 수갑을 찬 채로 운영권 포기각서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었다”고 증언했다. 헌납 형식을 취했지만, 강요받은 ‘헌납’이었던 것이다.

김지태씨가 부산일보 주식을 무상기부하겠다고 서명한 기부승락서. 김씨는 1976년 발간한 자서전 <나의 이력서>에서 “각종 양도서에 강제로 날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태씨가 부산일보 주식을 무상기부하겠다고 서명한 기부승락서. 김씨는 1976년 발간한 자서전 <나의 이력서>에서 “각종 양도서에 강제로 날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가 그렇게 풀려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1962년 7월14일 그의 재산이 그대로 출연된 ‘5·16장학회’가 설립됐다. 이름만 바꿨을 뿐, 주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동창, 행정부 각료 등이 이사장과 이사진을 도맡았다.

초대 이사장을 이관구 전 재건국민운동본부장이 맡았고 엄민영 전 내무부 장관, 박 전 대통령 친구인 최석채 전 문화방송 이사가 그 뒤를 이었다. 부정 축재범으로 잡아들여 ‘헌납’받은 재산으로 다시 부정축재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두환 정권으로 들어서면서 5·16 장학회는 1982년 1월 ‘정수장학회’(박정희의 ‘正’과 육영수의 ‘修’를 따서 만든 이름)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번에도 이름만 바꿨을 뿐 이사장 자리는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이 계속 역임했다. 박 전 대통령 동서인 조태호 전 문화방송 이사, 김창환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 등이 그들이다.

1995년에는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사장직에 이름을 올렸다. 박 위원장은 10년간 이사장 위치에서 2억5000만원가량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8월부터 당내 진상조사단을 꾸려 환수 압박에 나섰고, 이해찬 총리는 그해 연말에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정수장학회 사건은 정치 쟁점으로 증폭됐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 위원장은 2005년 3월 이사장직을 박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을 지낸 최필립씨(84)에게 넘겼다.

박정희, 쿠데타 후 뺏은 ‘부일장학회’… 이름만 바꿔 50년 사유화

공권력에 의한 강탈이 벌어진 지 40년이 넘은 2005년 국가의 침묵이 깨졌다.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가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조사 결과를 2005년 7월22일 발표한 것이다. 진상규명의 신호탄이었다.

국정원은 피해자인 김씨 유족과 관련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5·16 군부세력이 김씨로부터 부일장학회를 사실상 강탈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씨는 작고한 뒤였다.

2006년 1월 김지태씨 차남 김영우씨가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이후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을 조사했고 2007년 5월29일 “국가배상과 재산 환원을 해야 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국가 공권력의 강요에 의해 김씨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것이 밝혀진 이상 국가는 피해자에게 그 재산을 원상회복함이 원칙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헌납 주식과 재산은 정수장학회로부터 국가에게 원상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처음으로 국가 배상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현재까지 정수장학회 측은 환원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최필립 이사장도 건재하다. 정수장학회 측은 진실화해위 결정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재산 환원에 응하지 않고 있다. 정수장학회를 놓고 벌어진 영욕의 50년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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