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재활용 총리’… 땅바닥에 떨어진 대통령 리더십

안홍욱 기자

박 대통령, 국정공백에 고육책 ‘나홀로 국정’ 강화 예고

인사 포기 극단 선택… ‘인사청문 시스템 탓’ 시위 성격도

권위·신뢰 추락 ‘레임덕’ 자초… 국정동력 타격 불가피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을 ‘깜짝 발표’한 것은 장기간 국정공백 상태를 더 이상 놔둘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분석된다. 도덕성·능력을 갖춘 새 총리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박 대통령의 다짐,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겠다는 정 총리의 약속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국정 최고책임자와 국정 2인자의 권위는 ‘재활용 인사’로 땅바닥에 떨어진 셈이다. 박 대통령의 ‘나홀로’ 국정운영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돌고 돌아 ‘재활용 총리’… 땅바닥에 떨어진 대통령 리더십

■ 극단적 인사 트라우마 표출

박 대통령이 정 총리를 눌러앉힌 것은 ‘벼랑 끝 선택’이다. 소신 이미지의 안대희 전 대법관, 도덕성만은 자신 있다는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연달아 총리 후보로 지명했지만 여론은 받아주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국정을 ‘시한부’ 정 총리가 61일째 이끌다보니 장기간 표류했다. 새 총리를 찾아 검증하고 국회 인준 절차를 밟는 데 다시 한 달 이상이 필요하게 되자 박 대통령은 ‘인사 포기’라는 극단적 방식을 취했다. 거듭된 인사 실패에 박 대통령 지지도는 급락했지만 국민 기준을 충족시킬 만한 새 인물을 내놓을 자신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정부 출범 당시 장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5명이 줄줄이 낙마하면서 생긴 ‘인사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것이다.

청와대는 문 전 지명자 낙마 다음날인 25일만 해도 ‘개혁성’과 ‘청문회 통과’를 새 총리 지명 요건으로 제시했다. 인선을 서두른다고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미 정 총리 유임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국민적 관심사안”(민경욱 대변인)인 총리 문제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설명한 것으로 관측된다.

박 대통령의 정 총리 유임은 결국 대국민 약속을 위반한 것이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대신 ‘산적한 국정과제 추진’을 위한 불가피성으로 합리화했다. 또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의 문제’라고, 시위하듯 국회에 책임을 떠넘겼다.

■ 동력 훼손된 국정쇄신

‘세월호 정신’은 희석될 상황에 처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인적쇄신과 이를 발판으로 한 ‘국가개조’ 작업을 ‘2기 정부’ 국정기조로 잡았다. 일방적 국정운영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라는 민심 요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쇄신 대상이자 스스로 책임을 인정한 정 총리가 ‘쇄신 컨트롤타워’로 나서는 꼴이 됐다. 공직사회 혁신, 비정상의 정상화 등 국정과제 추진에 국민 동의를 이끌어낼지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정 총리는 내각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해 ‘대독 총리’ ‘의전 총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박 대통령이 정 총리를 유임한 것을 두고 직접 국정과제를 진두지휘하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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