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초유 ‘경질 총리’ 정홍원 유임… 인적쇄신 원점
청 인사수석실 신설… 여 “정부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새 국무총리 지명을 포기하고 정홍원 총리(70)를 유임시켰다. 총리 지명자 연속 낙마라는 ‘인사 참사’에 당장 적임자를 찾을 수 없다는 무능함을 공개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로 요구받은 인적쇄신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 윤두현 홍보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세월호 사고 이후 시급히 추진해야 할 국정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들로 인해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대통령께서는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고민 끝에 정 총리의 사의를 반려했다”고 말했다.
정 총리가 지난 4월27일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지 60일 만에 인적쇄신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통령이 총리 경질을 예고했다가 거둬들인 헌정 사상 초유의 ‘인사 해프닝’으로 기록됐다.
안대희 전 후보자가 지명 6일 만인 지난달 28일 전관예우 문제로, 문창극 전 지명자가 14일 만인 24일 친일·반민족 발언 논란으로 잇따라 낙마하자 박 대통령이 세번째 총리 지명 대신 유임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다른 총리 후보를 지명한다 해도 여론 검증을 넘을 자신이 없고, 3연속 낙마할 경우 집권 1년 반 만에 정권이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으로선 잇단 인사 실패에 ‘무능 정부’ 비판을 감내하고, 백기를 든 것이다.
이 같은 ‘인사 참사’는 박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보다는 자신의 기준에만 맞춘 좁은 인사스타일을 고집한 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 보수진영에는 그렇게 쓸 사람이 없냐는 말도 나온다. ‘재활용 총리’ ‘박 대통령 인사수첩 분실’ 등 여론의 힐난은 단적인 예이다.
청와대는 뒤늦게 인사수석실을 신설해 인재 발굴과 평가를 상설화하는 등 인사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개선책을 내놨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인사 실패에서 야기된 정권 위기 상황을 탈출하는 데만 급급하고 국정쇄신은 포기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 총리 사임은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국정 난맥을 수습하는 인적쇄신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대독 총리’로 책임총리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 그가 공직사회 혁신 등 개혁작업을 주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많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로운 총리 후보 한 명을 추천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정권임을 자인했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정부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바람직한 처사가 아니다”(이재오 의원)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