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메달로 지은 집… 양학선 꿈 이뤘다

고창 | 이용균 기자

단칸방 비닐하우스 옆 새집… ‘도마 구름판 모양’ 1년 공사

메달 걸린 거실서 가족 회포

“이전과 같이 농사 지을 뿐… 바람 있다면 돕고 사는 것”

1년 전, 8월6일에서 7일로 넘어가던 밤. 영국 런던 노스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양학선(21·한국체대)은 꽃처럼 날았다. 그 꽃이 꽃병에 꽂히듯 양학선이 완벽한 착지를 했을 때 경기장에서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같은 시간, 지구 반바퀴 너머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남동마을회관에서도 런던 못지않은 환호성이 터졌다.

양학선의 어머니 기숙향씨(44)는 “정말 꽃처럼 날았다”고 했다. 동네 어른들의 축하와 격려가 마을회관에 가득 찼다.

그때 아버지 양관권씨(54)는 자리에 없었다. 양씨는 “학선이 중·고등학교 때도 난 학선이가 착지하는 모습을 안 봤다”고 했다. 다른 선수들이 착지할 때 나뒹구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양씨는 “뛰어오르는 것까지는 보겠는데, 떨어질 때 다른 선수들처럼 넘어지거나 뒹굴면 어쩌나 싶어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되더라”고 했다.

[단독]금메달로 지은 집… 양학선 꿈 이뤘다

그날도 양씨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마을회관을 애써 피해 비닐하우스 단칸방에 누워 있었다. 작은 고개 너머 마을회관에서 커다란 함성이 일자 부리나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머니 기씨는 “바깥양반이 양말도 안 신고 맨발에 신발 신고 뛰어왔는데…. 오메, 어찌나 민망하던지”라며 그 날을 되살렸다. 부모가 함께 마을회관에서 양학선의 금메달에 환호하는 모습은 나중에 연출된 장면이었다.

그 단칸방 비닐하우스 대신 번듯한 새집을 짓는 것은 효자 양학선의 꿈이자 소원이었다. 한국 체조 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로 그 소원을 이뤘다. 양학선이 금메달을 따고, 비닐하우스 단칸방 소식이 전해지자 여기저기서 돕겠다는 손길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전주 지역에 기반을 둔 성우건설은 양학선에게 새집을 지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약속은 1년 만에 지켜졌다. “금으로 새집을 지을게요”라던 양학선의 소원은 현실이 됐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체조사상 첫 금메달을 딴 양학선의 ‘새집’ 소원이 이뤄졌다. 예전 비닐하우스 단칸방(위 왼쪽) 뒤로 지난 7월15일 완공된 양학선 부모의 새집(아래) 앞에는 ‘올림픽영웅 양학선’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양학선의 부모(위 가운데)는 낚시를 좋아하는 막내아들 학선을 위해 집 앞에 연못(위 오른쪽)을 만들고 물고기를 넣었다.  고창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지난해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체조사상 첫 금메달을 딴 양학선의 ‘새집’ 소원이 이뤄졌다. 예전 비닐하우스 단칸방(위 왼쪽) 뒤로 지난 7월15일 완공된 양학선 부모의 새집(아래) 앞에는 ‘올림픽영웅 양학선’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양학선의 부모(위 가운데)는 낚시를 좋아하는 막내아들 학선을 위해 집 앞에 연못(위 오른쪽)을 만들고 물고기를 넣었다. 고창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새집은 비닐하우스 뒤에 지어졌다. 지난겨울에 시작하려던 공사가 눈이 많이 오는 바람에 올봄으로 미뤄졌다. 원래 양학선의 새집은 ‘도마의 신’을 상징할 수 있도록 밟고 뛰어오르는 구름판 형상으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지붕의 한 끝이 날렵하게 하늘로 향하는 모양새였다.

실제로는 시공상의 여러 문제점 때문에 모양이 조금 바뀌었지만 양지바른 터에 만든 새집은 분명 ‘금메달로 만든 집’이었다.

4월에 시작해 지난 7월15일 완공됐고 31일 준공허가가 떨어졌다. 아버지는 “효자 아들 둔 덕분에 새집이 생겼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이제 번듯한 주소가 생겼다”며 활짝 웃었다.

양학선 선수 어머니 기숙향(왼쪽)·아버지 양관권씨

양학선 선수 어머니 기숙향(왼쪽)·아버지 양관권씨

대회와 합숙이 빡빡하게 이어지는 바람에 양학선은 지난해 올림픽 직후 동네잔치 때 고향을 찾은 이후 거의 1년 동안 집에 오지 못했다. 이번에 집이 다 지어지고 나서야 고향에 들를 수 있었다.

양학선은 거실에 자신의 올림픽 금메달이 걸린 새집, 새로 마련된 자기 방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어머니는 “부자가 새집에서 밤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더라”며 또 웃었다. 아버지는 모처럼 아들과 술잔을 나누며 “다른 것 다 필요없고 아프지 말고 잘 지내라”고 했단다.

양학선이 지난해 올림픽에 출전하고 있을 때 아버지의 소원은 “학선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낚시를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제 부쩍 바빠진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집 앞에 낚시를 할 수 있는 작은 연못을 팠다. 거기에 붕어, 메기, 미꾸라지, 동자개를 풀어넣었다. 얼마 전 새집 짓고 잠깐 들렀을 때 양학선은 옷도 갈아입기 전에 아버지가 파 놓은 연못에 낚싯대부터 던져넣었다.

양학선 선수의 새 고향집 마당에 있는 조그만 연못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양학선 선수의 새 고향집 마당에 있는 조그만 연못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양학선의 금메달로 지은 새집 앞에는 ‘런던 올림픽의 영웅 양학선의 집’이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렸다. 양학선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흔쾌히 5억원을 후원했던 LG그룹은 새집이 지어졌다는 소식에 LG 가전제품 일체를 또 보내왔다. 어머니는 “우리 학선이 예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금메달 획득 직후 북적북적했던 석교리 마을은 지금,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1년 동안 달라진 건 없다. 그저 짐승들 먹이고 농사짓고, 그게 다다”라고 했다.

비닐하우스 단칸방은 이제 농기구들을 모아두는 창고가 됐다. 그 뒤에서는 칠면조 30여마리가 소리를 지른다. 집 옆 마당에는 흑염소 네 마리가 풀을 뜯고 있고, 산에서 내려와 콩잎을 뜯어먹는 노루들을 쫓아내려 들여온 커다란 개 5마리가 집 앞을 지키고 있다. 어머니는 “달라진 게 있다면 집이 하나 생겼고, 이제 우편물을 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주소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의 소원은 소박하지만 양학선이 날아오를 때마다 힘차게 디디는 구름판을 닮아 무게가 있었다. 금메달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지 않는 삶. 어머니는 “우리 학선이가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로 남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은 만큼, 앞으로 올림픽 2연패도 좋고 3연패도 좋지만, 어려운 이웃 도와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는 “머지않아, 양학선의 이름을 딴 재단이 만들어질 것 같다”며 “그때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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