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우물, 샘나는 맛

김진영 식품 MD

(93)전북 정읍 샘고을시장

정읍과 시내에서 조금만 가면 내장산 초입이라 시장 구경하기 전에 들르기 좋다. 단풍은 11월 초를 지나며 본색을 드러낼 듯싶다.

정읍과 시내에서 조금만 가면 내장산 초입이라 시장 구경하기 전에 들르기 좋다. 단풍은 11월 초를 지나며 본색을 드러낼 듯싶다.

가을 내장산처럼…
노랗게 ‘뻥’ 튀기거나
빨갛게 ‘쓱’ 비비거나

정읍하면 22년 전 떠났던 출장길이 떠오른다. 타고난 역마살의 시발점이었다. 그 당시 목적지는 정읍이 아니라 전남 영광이었다. 고속도로도 변변치 않던 시절, 서울서 지방 가는 고속도로라고는 경부, 영동, 호남 고속도로만 있었다. 하지만 출장 가는 재미를 알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영광에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정읍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고창을 지나 영광으로 가야만 했다. 구불구불 국도길 따라 지났던 황톳길의 여운이 강렬했는지 정읍이나 태인 나들목으로 빠질 때면 “그랬지” 하는 혼잣말과 함께 2000년 풍경이 자동 소환된다. 이번에도 정읍 나들목에서 빠지지 않고 태인으로 빠져 잠시 일을 보고는 정읍 시내로 갔다.

막 단풍 들기 시작한 내장산 돌아
좌우 하나씩 튀밥 집 자리한 시장
오래된 점포들 만나는 재미 쏠쏠

산외면의 좋은 콩으로 빚은 두부
고소함이 다른 것들의 열댓 갑절
은은한 생강 향의 ‘양하’도 제철

뷔페식 비빔밥에 매콤 볶음국수
우리밀로 구운 빵에도 깊은 맛이

정읍 시내 샘고을 시장은 오일장이 따로 서지 않는다. 원래는 2, 7일 든 날에 장이 섰다. 오일장에 사람이 많이 모이자 오일장은 상설시장이 되었다. 정읍 시내 주위의 면에서는 오일장이 선다. 토요일 정읍시장을 구경하고는 3, 8일 든 장이 서는 신태인 시장 구경을 나섰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시장은 공사 중이었고 주변으로 몇몇 상인만 장을 펼치고 있었다. 정읍시장을 구경하기 전 내장산을 잠시 다녀왔다. 정읍과 내장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궁합. 시내에서 조금만 가면 내장산 초입이다. 내장산 구경은 처음이다. 담양으로 출장 가면 가끔 추월산을 지나 내장산을 넘어서 정읍이나 전주에서 고속도로를 올라타곤 했다. 지나가며 봤던 내장산이 내 기억의 전부였다. 아직은 단풍이 잎사귀 끝에 머물러 있다. 11월 초를 지나며 단풍은 본색을 드러낼 듯싶다. 가끔은 내장산에서 산외면 방향으로 길을 잡기도 했다. 산외면은 한동안 단풍철 내장산처럼 전국에서 사람을 끌어모았다. 지금처럼 동네마다 정육식당이 없던 시절, 마을 전체가 정육식당이었다. 저렴한 수소를 팔던 산외면은 다른 지역과 같이 등급 높은 1+, 1++를 좇아 팔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몇 해 전 갔던 산외는 철 지난 단풍처럼 빛바랜 곳이 되었다. 지면을 통해 여러 번 한우 이야기를 했다. 전국에서 매년 백만 마리의 한우를 잡는다. 그중 거세우 비중이 50%가 넘는다. 등급 높은 것 대부분은 거세우라 보면 된다. 전국 어디서 1+ 이상을 먹는다면 대개 거세우다. 거세우는 특징이 있다. 어디서 생산하든 맛이 비슷하다. 횡성에서 먹든, 하동에서 먹든 말이다. 30년 가까이 산지를 다니면서, 때로는 한 달에 몇십 마리 소를 잡아 보면서 나름의 한우 먹는 기준이 생겼다. 첫째는 수소, 두 번째는 암소, 세 번째는 없다. 보통은 마블링 좋은 거세우를 최고로 치지만 필자는 잘 먹지 않는다. 느끼할 뿐 한우의 특징인 구수한 맛이 없는 소가 거세우다. 정읍 시내에서 수소는 찾을 수가 없고 암소만 전문으로 파는 곳이 있다. 등급은 1에서 2등급으로 보통 송아지 세 번 정도 뺀 암소인 듯싶었다. 거세우에서 맛볼 수 없는 향과 맛이 있다. 가격도 저렴해 살치, 업진, 갈빗살이 포함된 모둠이 600g 기준 9만원 정도다. 마블링이 없어도 질김이 없다. 한우만 (063)531-9221

꽃대가 올라오는 가을에 굽거나 튀겨 먹기 좋은 양하.

꽃대가 올라오는 가을에 굽거나 튀겨 먹기 좋은 양하.

시장 보는 법의 제1원칙은 한 번은 슬쩍 돌아보는 것. 되돌아오면서 눈여겨본 것을 사야 한다. 가격은 비슷해도 선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오일장은 할매들이 가져나온 것들이 각기 다르기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일장이 상설시장이 된 샘고을 시장에 그런 재미는 없다. 다만 곳곳에 있는 오래된 점포의 속살을 보는 재미는 있다. 다른 시장보다 많은 방앗간과 팥죽 집이 샘고을 시장의 특징이다. 시장의 좌우에 하나씩 있는 튀밥 집이 시간마다 번갈아 가며 뻥뻥 소리를 내는 곳이 샘고을 시장이다. 서늘해진 기온은 쌍화차 거리에서 마시는 쌍화차 한 잔의 맛을 돋운다. 가을에 샘고을 시장에서 찾아야 할 것은 바로 ‘양하’다. 양하는 생강과의 식물로 은은한 생강 향이 일품이다. 봄에는 열린 가지로 나물을, 여름이면 잎을 쌈 채소로 먹는다. 봄, 여름보다는 가을이 양하 먹기에는 제격이다. 땅속 줄기에서 뻗어 나온 꽃대가 올라오는 시기가 가을이다. 흙이 묻은 부분을 잘 씻어내고는 장아찌를 담가도 좋고 튀김을 하면 별미다. 고기 먹을 때 같이 구워도 좋다. 스테이크를 낼 때 살짝 데쳐서 올리면 훌륭한 장식이 되는 것이 바로 양하다. 따뜻한 지역에서 난다. 단풍 구경하러 간 김에 양하를 산다면 입까지 즐거운 여행이 될 거다.

마치 대기업 포장 두부 열댓 개를 압축한 듯한 맛을 내는 두부.

마치 대기업 포장 두부 열댓 개를 압축한 듯한 맛을 내는 두부.

가을에 정읍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콩 때문이다. 내장산 주변으로 품질 좋은 콩 농사를 많이 짓는다. 과거 전주 함씨네 두부가 산외 등지에서 계약 재배한 토종콩을 사용했을 정도로 정읍은 맛있는 콩을 생산한다. 시월 말, 당연히 좋은 콩이 나는 정읍을 선택했다. 지금 즈음은 나오지 않을까 해서 갔는데 조금 일렀다. 해콩은 11월 중순이 돼야 나오기에 내 걸음이 보름 정도 빨랐다. 정읍 시내에서 부안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두승산콩마을이 나온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식당 이름이다. 콩으로 만드는 음식인 청국장과 두부, 순두부찌개가 주 메뉴다. 여럿이라면 전골에 두부김치를, 혼자라면 찌개를 주문하면 된다. 욕심을 내서 순두부와 두부김치를 주문했다. 김치와 두부를 먹기 전 두부만 먹었다.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강타했다. 제대로 된 두부를 만났다. 슈퍼마켓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대기업 포장 두부 열댓 개를 압축한 맛이다. 1년 묵은 콩으로 만들었음에도 쨍쨍한 고소함이 ‘내가 두부다’를 외쳤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여기까지다. 단풍이 사그라들고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 가장 맛있는 것이 해콩이다. 콩의 에너지가 가득할 때, 그 콩으로 만든 두부는 천하일미일 것이다. 11월이 지날 즈음 다시 한번 맛있는 두부를 먹으러 갈 것이다. 가을, 모든 것이 맛이 들지만 콩이 제철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콩이 가장 맛있는 시기가 늦가을이다. 두승산콩마을 (063)536-0199

청양고추를 더해 매콤하게 볶아낸 독특한 식감의 국수.

청양고추를 더해 매콤하게 볶아낸 독특한 식감의 국수.

DIY(Do it yourself)가 한동안 유행했었다. 스스로 무엇을 하면 즐겁다. 그게 먹을 것이라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정읍에 비빔밥을 스스로 만들어 먹는 곳이 있다. 비벼 먹을 수 있는 그릇에는 아주 기본이 되는 것만 담겨 나오고는 11가지 재료를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산나물이 좋다면 그것을, 그것보다는 무채가 좋다면 더 많이 선택할 수 있다. 누군가가 정해진 종류와 양에 따라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게다가 식재료 하나하나 정읍 주변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했기에 향까지 좋다. 비빔밥 먹을 때 들기름 발라 구운 김과 함께 하면 비빔밥의 맛이 배가 된다. 비빔밥이 맛있지만 볶음국수를 잊어서는 안 된다. 청양고추를 더해 매콤하게 볶아낸 국수는 비빔국수와는 다른 식감과 맛이 있다. 직접 만든 식혜가 후식으로 있어 매운 국수를 먹고 나서 입가심으로는 그만이다. 맵다고 해도 사람 괴롭히는 매운맛이 아니라 먹을 때만 맵다. 구운 김과 반찬은 식당 내 매대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비빔밥과 국수, 참으로 맛나게 먹었다. 새미찬 국수전문점 (063)531-9032

동네마다 ‘한칼’ 하는 빵집이 있다. 정읍도 나름 방귀 좀 뀌는 곳이 몇 곳 있다. 그중에서 두 곳을 다녀왔다. 한 곳은 정읍 나들목 직전의 태인에 있고 하나는 시내에 있다. 태인에 있는 베이커리는 우리밀과 전분에 귀리를 더해 빵을 만든다. 귀리구운떡은 아무것도 없이 귀리가루와 전분으로 만들었다. 처음 맛은 심심하지만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입안을 살살 자극한다. 숨어 있던 단맛은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맛을 낸다. 심심한, 하지만 매력 가득한 떡이자 빵이다. 귀리가루와 단팥이 만난 귀리호떡 또한 요물이다. 살짝 구워 먹어도 좋고 아니면 그냥 먹어도 괜찮다. 팥은 직접 매장에서 만들기에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국내산 팥이라며 통조림에 든 것은 전분이 많이 들어 있어 진득거린다. 여기 팥은 그런 진득거림 없이 적당한 단맛이 깔끔하다. 팥이 맛있으니 우리밀 단팥빵 또한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동네에 대기업 빵집 대신 이런 빵집이 있다면 자주 애용할 듯싶다. 또 한 군데는 마늘빵이 유명하다. 태인에 들렀다가 오전 10시30분이 지나 빵집에 갔다. 마늘빵은 이미 다 나가고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하나마저도 누가 미리 지불하고 간 것이라 사지 못했다. 문 열기 전부터 줄 서는 곳인데 시간 계산을 잘못했다. 태인베이커리 (063)534-0602, 제이엘 제과점 (063)536-4300

다른 시장보다 방앗간과 팥죽 집이 많은 샘고을 시장. 좌우에 하나씩 있는 튀밥 집에서는 시간마다 번갈아가며 ‘뻥’ 소리가 난다.

다른 시장보다 방앗간과 팥죽 집이 많은 샘고을 시장. 좌우에 하나씩 있는 튀밥 집에서는 시간마다 번갈아가며 ‘뻥’ 소리가 난다.



[지극히 味적인 시장]우물우물, 샘나는 맛

▶김진영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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