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계단도 못 올랐지만 정신 선명했고 유머 넘쳤다”

김기범 기자

아이들과 대부분 시간 보내… 애플 경영진에 조언도

“내 아이들이 내가 왜 자신들 곁에 있어주지 못했는지,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기를 바란다.” 때론 물러나 선(禪)의 고요 속에 직관을 응시하고, 때론 질풍노도처럼 남이 걷지 않은 길을 내달려온 스티브 잡스도 생애 마지막 나날만큼은 철저하게 아이들과 아내의 곁에서 보냈다.

잡스의 여동생 모나 심슨은 6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마지막 몇 주 동안 스티브는 애플 직원들과 네 자녀, 아내 등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 대한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심슨은 “스티브는 가족들에게 미안해했고, 가족들의 곁을 떠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물론 잡스가 “태피스트리처럼 씨줄과 날줄로 나와 엮여 있다”던 애플을 잊은 건 아니었다.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지난 8월 넘기고 죽기 며칠 전까지 지난 4일의 아이폰4S 발표회에 관한 조언을 했다. 하지만 애플에 관심을 기울이는 ‘짧은 외도’를 제외하고는 온전히 가족의 품에서 생을 마감했다.

<b>사망 8일 전</b> 스티브 잡스가 사망 8일 전인 지난달 27일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집 앞에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앉고 있다. 출처 | 데일리메일

사망 8일 전 스티브 잡스가 사망 8일 전인 지난달 27일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집 앞에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앉고 있다. 출처 | 데일리메일

애플의 신제품뿐 아니라 자신의 사생활도 철저하게 외부에 노출하지 않았던 잡스가 자신의 삶을 가감없이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아이들 때문이었다. 잡스는 첫 췌장암 수술을 앞둔 2004년 어느 날 시사주간 타임의 편집장을 지낸 전기작가 월터 아이잭슨을 불러들였다. 아이잭슨은 이 자리에서 “전기를 써달라”는 잡스의 부탁을 거절했다. 당시 잡스가 수술을 받게 될 상황임을 몰랐던 아이잭슨은 “지금 말고 10년이나 20년 뒤쯤 당신이 은퇴할 때 써주겠다”고 말했다.

아이잭슨은 6일 타임 웹사이트에 올린 에세이에서 잡스가 자서전 집필을 부탁하던 당시를 회고했다. 잡스는 “아이들이 나를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을 남겨달라고 말했다. 일생 동안 한 번도 자신의 삶을 공개한 적이 없는 잡스는 이때부터 아이잭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았다.

잡스는 자신을 입양보낸 ‘생물학적인 부모’와 끝내 화해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평소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 회한이 뒤늦게 찾아든 것이다. 아이잭슨이 쓴 잡스의 전기 <스티브 잡스>는 오는 24일 발매된다. 잡스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지 몇 시간 만에 사전 주문만으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6일에는 아마존 베스트셀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아이잭슨은 몇 주 전 마지막으로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의 자택으로 찾아갔을 때 잡스의 모습도 전했다. 잡스는 1층 침실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워 있었다. 원래 잡스의 침실은 보통의 미국 가정들처럼 2층에 있었지만 혼자 힘으로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이잭슨은 “그러나 스티브의 정신은 여전히 선명했고, 유머도 생기가 넘쳤다”고 전했다.

잡스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2월 이 같은 사실을 아주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알렸다. 때때로 찾아오는 지인들의 방문을 막는 것은 아내 로렌의 일이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잡스의 병세가 심해져 회복하기 어렵다는 소문이 돌면서 작별만찬을 하자거나 공로상을 수여하겠다는 등 여러 제안이 들어왔지만 잡스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애플과 잡스의 유족은 아직까지 잡스의 장례식 관련 일정 및 장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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