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예방적 살처분’ 않고도 구제역 확산 막았다

도쿄 | 조홍민 특파원

유전자 한국과 99% 유사

빠른 신고·강력한 방역·전국적 초동 대응 ‘주효’

구제역 광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비교적 적은 피해로 구제역 확산을 막았던 일본의 사례가 새삼 관심을 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3월 말 규슈섬 남부 미야자키현에서 첫 사례가 보고됐으나 7월 구제역이 끝날 때까지 타 지역으로 번지지 않았다.

日 ‘예방적 살처분’ 않고도 구제역 확산 막았다

미야자키에서만 감염된 소·돼지 28만8643마리가 살처분됐다. 특히 지난 7일 일본 농림수산성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구제역 바이러스는 미야자키현에서 확산된 바이러스와 유전자 배열이 99% 이상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병원균에 100만마리 이상이 살처분되고 전국이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과는 큰 대조를 보인 것이다.

일본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데는 신속한 신고와 함께 강력한 방역대책이 주효했다. 한국 방역당국의 설명처럼 미야자키현의 경우 축산농가 간 거리가 멀어 구제역의 확산이 더뎠고, 바이러스의 초동방역이 쉬운 여름에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일본 측의 강력한 초동방역 체계는 눈여겨볼 대목이다.

일본은 중앙정부가 방역권한을 지자체에 상당 부분 위임하고 있다. 지난해 3월26일 미야자키현 쓰노초의 한 농가의 소 한 마리에서 의심증상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처음으로 접수됐다.

당국은 정밀검사 후 닷새 뒤인 31일 감염사실을 확인하고, 감염경로 차단 등 본격 비상 방역체제에 돌입했다. 같은 규슈섬의 가고시마·구마모토·오이타현 등 인접 현들이 각각 독자적인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구제역 차단 조치에 착수한 것은 물론이다.

구제역이 본격 창궐하기 시작한 5월 이후에는 각 지사의 명령에 따라 독자 소독, 소독약 무료 배포, 공항·항만 검역 강화는 물론 공공시설 폐쇄, 이벤트 중지 등의 대책이 이어졌다. 5월23일 미야자키에서 열릴 예정이던 프로축구 J2리그 경기는 순연됐고, 7월 고시엔 고교야구대회 현 예선 때는 일반 입장객을 받지 않고 선수 가족들만 들여보낸 채 경기를 열었다.

특이한 점은 방역대책이 규슈섬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실시됐다는 것이다. 시코쿠섬의 고치현은 미야자키 구제역 발생 직후 가축을 대상으로 긴급조사를 실시하고 현내의 축산농가에 소독약을 무료로 나눠줬다. 간사이 지방인 효고현에서도 5월 대책회의를 열고 현내 2560여 축산농가에 대해 일제 소독을 실시했다.

미야자키로부터 1200㎞가량 떨어진 혼슈(본섬) 북부 이와테현에서는 냉동정액 18만본, 종우 18마리를 시 합동청사로 옮겨 보관했다. 구제역이 확산되면 우량 종우 12마리를 남기고 나머지 6마리를 시 청사에서 50㎞ 떨어진 한 축산연구실로 이전키로 하는 대비책까지 마련했다.

오키나와현에서는 구제역 바이러스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나하공항에 소독매트를 깔아 비행기 탑승객들의 구두 바닥까지 소독했다.

일본에서는 ‘예방적 살처분’이 아직 법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다. 주일 대사관의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9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예방적 살처분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방역체계가 일본보다 낫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는 지극히 비인도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하지 않고서도 철저한 관리와 대비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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