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에 ‘관광 경주’도 두 손 들었다

백승목 기자

비수기·폭설 겹쳐 세계유산 양동마을 등 썰렁

동계 스포츠캠프도 전면취소 겨울장사 손놓아

관광도 ‘살처분’된 것일까.

경북 경주는 지금 ‘보릿고개’를 넘는 중이다. 국내 관광 1번지라는 이름값이 무색할 지경이다. 겨울철은 관광 비수기인 데다 폭설이 내렸고, 구제역까지 확산되면서 경주를 찾는 관광객은 눈에 보이게 줄었다. 매년 이맘때 관광업계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던 동계 스포츠캠프마저 구제역으로 취소되면서 음식점과 숙박업소 등은 개점 휴업상태다. 주민들은 이래저래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눈 덮인 양동마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왼쪽에 보이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집도 텅 비어 있다. | 백승목

눈 덮인 양동마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왼쪽에 보이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집도 텅 비어 있다. | 백승목

◇ 썰렁한 천년고도 = 경주의 주요 관광지는 지난해 12월부터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세계유산 등록으로 관심을 끌었던 양동마을(경주시 강동면)도 한산하다. 양동마을은 세계유산 등록 이후 지난해 8~11월 하루 평균 2000~3000여명의 관광객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400~500여명 선으로 크게 줄었다.

마을 내 관광안내소도 문을 닫았다. 안내소 창문에는 ‘1월은 안내를 쉽니다. 2월부터 다시 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지난 주말(8일) 전세버스를 이용해 양동마을로 단체관광을 온 김성훈씨(64·부산)는 “관광객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고, 관광해설사도 안 보여 마을을 한 바퀴 휙 돌아보고 말았다”고 말했다.

강동면의 각 마을에는 지난 3일 폭설(적설량 28㎝)이 내린 뒤 일주일가량 지났다. 하지만 도로 곳곳은 여전히 빙판길이었다. 시금치와 부추 재배용 비닐하우스 124동이 무너져 내리는 피해도 났다. 이런 분위기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올 리 만무했다.

강동면에서 형산강을 건너 천북면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구제역 확산 차단을 위한 방역초소가 곳곳에 설치됐다. 도로 입구에는 ‘구제역 방지를 위해 외부 차량의 진입을 자제합시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평소 한우숯불고기로 각광받는 천북면 화산불고기단지에도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인근 보문관광단지는 눈 속에 갇힌 채 찬바람만 불고 있었다.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상가의 자전거와 미니 전동자동차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 백승목 기자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상가의 자전거와 미니 전동자동차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 백승목 기자

이곳 자전거 대여점 업주 박문희씨(40)는 “겨울철에 원래 손님이 적은 데다 올해는 구제역 여파에다 폭설까지 겹쳐 장사를 망쳤다”고 울상이었다. 수학여행의 필수코스인 불국사 관광단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30~40여 객실을 갖춘 30여곳의 유스호스텔 등 숙박단지에는 관광객 환영현수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박시정 불국사숙박협회장은 “재작년에는 신종플루 때문에 관광업계가 휘청거렸는데 올해는 구제역 때문에 먹고살기가 힘들다”면서 “관광객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서 숙박업소 대부분이 장사를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경주에는 지난 한 해 동안 910만4600여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관광비수기로 접어든 12월 한 달에는 43만여명에 그쳤다. 관광성수기인 4~5월이나 9~10월 한 달 평균 100만~200만명에 크게 못미친다.

◇ 관광도 ‘살처분’ = 겨울철 관광 수익 감소를 만회하는 것은 동계 스포츠캠프다.

경주시는 4년여 전부터 전국의 각급 학교와 직장 스포츠단체의 동계 훈련을 경주에서 하도록 유치해왔다. 지난해 캠프(1~2월)에는 309개 단체 6만7700여명(연인원)이 경주를 다녀가면서 70억여원의 경제 효과를 냈다. 관광비수기 경주의 관광업계에 단비가 됐다.

인조 및 천연잔디 축구장(12곳)을 비롯, 실내체육관·체육공원·각급 학교 및 사설 운동시설 등 스포츠인프라가 잘 갖춰진 덕분이었다. 여기에 유적관광까지 할 수 있어 경주 동계 훈련캠프가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올해 스포츠캠프는 전면 취소됐다.

경주시는 지난해 10월부터 축구·태권도·야구 등 280여개 스포츠단체를 유치해 올해 1~2월 경주에서 동계 훈련을 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구제역이 확산추세를 보이자 스포츠캠프의 취소가 불가피해졌다. 경주에는 지난해 말 안강읍 산대리에서 첫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안강읍과 강동면 일대에서 19건의 구제역 신고(양성 10건, 음성 3건, 검사 중 6건)가 접수됐다. 또 2만1416마리의 소가 살처분됐고, 경주시 전역의 소 사육농가에 백신접종이 진행 중이다.

경주시청 스포츠마케팅 담당 김규완씨는 “경주는 국내 최대 한우 집산지인 만큼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외부인의 경주진입을 되도록 통제해야 해 스포츠캠프도 부득이하게 취소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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