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정상회의가 남긴 것
미국 주도 중국 견제 가속도
인도·태평양서 대서양 확장
‘전략적 파트너’였던 러시아
‘가장 직접적 위협’으로 지목
균형점 찾기 힘썼던 한국은
외교적 옵션 더욱 줄어들 듯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30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이번 회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대 중·러’로 빠르게 재편 중인 세계 질서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나토는 새 전략개념에서 중국의 구조적 위협을 처음으로 언급했고, 군사 비동맹 노선을 유지해온 핀란드와 스웨덴을 품에 안았다. 냉전기에 태동한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체제인 나토가 소위 신냉전으로 불리는 국제적 환경 변화에 발맞춰 기민하게 재정비를 마친 것이다. 미국 주도의 대중국 견제 흐름이 인도·태평양을 넘어 대서양까지 확장되면서 한국은 한층 고도화된 외교적 난제를 맞닥뜨리게 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나토 역할·범위 넓어지나
나토 30개 회원국 정상들은 29~30일 이틀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사실상 위협으로 명시하는 2022 전략개념을 채택했다. 전략개념은 향후 10년간 나토의 전략적 방향과 청사진을 담은 핵심 문서다. 1949년 창설 이후 나온 7개의 문서에서 중국 관련 내용이 포함된 것은 처음으로, 언급 수위도 상당히 셌다.
나토는 새 전략개념에서 “중국의 명시적인 야망과 강압적인 정책이 우리의 이익, 안보, 가치에 도전한다”고 적시했다. 또 “중국은 주요 기술 부문과 산업 부문, 전략 자재, 공급망을 통제하려고 하며 우주·사이버 공간·해양 영역에서 규칙에 기초한 국제 질서를 전복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중·러의 전략적 파트너십 심화를 두고는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 질서를 약화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언급은 향후 나토가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으로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략개념이 “항행의 자유를 포함해 공통된 가치와 규칙 기반 질서를 수호할 것”이라고 밝힌 점을 볼 때, 영국 등 일부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항행의 자유 수호 작전에서 나토의 역할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 정부로선 반도체 공급망 등 첨단기술 분야에선 미·유럽 무역기술위원회(TTC)를 통해, 군사안보 차원에선 나토를 발판으로 유럽과 함께 중국 견제에 나서게 됐다는 의미도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 초청된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역내 핵심 국가들엔 나토와의 협력에 적극 동참하라는 요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략개념에도 인도·태평양 지역과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들어갔다.
나토의 새 전략개념은 ‘나토 동진’을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서도 극적으로 달라진 인식을 드러냈다. 직전인 2010년 전략개념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호명된 러시아는 이번엔 “회원국 안보와 유럽·대서양 지역의 평화 안정에 가장 직접적인 위협”으로 지목됐다. 또 “러시아는 강압, 전복, 침공, (영토) 합병으로 영향력 입증과 지배권 확립을 추구한다”면서 러시아의 핵전력 현대화 움직임도 우려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해선 “강하고 독립적인 우크라이나는 유럽과 대서양의 안정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지속해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중립국’ 외교 입지 더 좁아져
중국과 러시아를 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현상 변경을 가하려는 “권위주의적 행위자”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나토는 새로 설정한 방향성에 맞춰 전열도 가다듬었다. 1년 이내 신속대응군(NRF) 병력 증강(4만명→ 30만명), 발트해 등 동부 전선 부대 여단급 승격, 폴란드·루마니아 전투여단 순환배치 확대, 영국에 F-35 스텔스기 2개 대대 추가 배치, 스페인 주둔 구축함 확대(4척→ 6척) 등이다.
나토는 또 러시아의 맞대응 경고에도 오랜 세월 군사적 중립을 지켜왔던 핀란드와 스웨덴을 새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는 유럽 안보 지형은 물론 세계 각국의 외교적 대응에도 중대한 파장을 예고한다. 나토는 전날 별도의 성명에서 핀란드와 스웨덴의 가입을 환영하며 “두 나라는 더욱 안전해지고, 나토는 더욱 강해질 것이며, 유럽과 대서양 지역은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두 나라의 나토 가입 결정은 러시아로부터의 안보 불안 해소 목적이 크다. 동시에 세계가 권위주의 대 자유주의 진영으로 나뉘면서 ‘중립’ 또는 ‘균형’ 외교가 설 공간이 현저히 좁아진 상황도 반영한다. 그동안 미·중 사이에서 국익을 극대화할 균형점을 찾는 데 힘썼던 한국과 같은 국가들의 외교적 옵션도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