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캅에 맡겨진 한국의 치안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영화 <로보캅>의 한 장면.

영화 <로보캅>의 한 장면.

1980년대는 할리우드의 제작사들이 걸작 시나리오를 경쟁적으로 뽑아내던 시기였다. 영화산업의 전성기는 아니었지만 시나리오의 품질만 놓고 평가한다면 주목할 만한 10년이었다. 개성적이면서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명작이 대거 제작되었다. 관객의 구미에 예술적 의미를 녹여 제공된 별미였다.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2> 그리고 <로보캅> 등 미래적 상상력을 구현한 SF 장르가 중심이었다. 정교하게 설계된 영화들의 서사와 캐릭터의 영향력은 수십년이 흐른 지금까지 속편이 제작되고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로보캅> 시나리오는 유치한 제목과 단순해 보이는 플롯으로 감독을 찾지 못하고 떠돌았다. 할리우드 경력이 전무했던 외국인 감독 폴 버호벤에게 전해졌을 정도로 제작 전망이 불투명했다. 폴 버호벤은 처음에 조악한 폭력물 각본이라 무시했지만 <로보캅> 시나리오가 함의하고 있는 사회 풍자와 철학적 알레고리를 발견하고 연출을 결심했다.

근 미래의 디트로이트는 범죄율이 높아 경찰들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시의 치안업무는 민영화되어 악덕 기업 OCP가 담당하고 경찰은 하수인일 뿐이다. OCP는 갱들에게 살해당한 경찰 알렉스 머피(피터 웰러)를 기반으로 강력한 경찰 로봇 ‘로보캅’을 개발한다. 로보캅은 자신을 죽인 범죄자들을 소탕하며 서서히 인간 알렉스 머피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많은 감독들이 거절할 만큼 너절한 스토리다.

<로보캅>은 무법과 폭력을 제압하는 공권력의 활극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입력된 명령어에 따라 작동하는 로봇과 성찰하는 인간이 한몸 안에서 분열하고 갈등한다. 폴 버호벤은 공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질문을 던진다. <로보캅>이 뻔한 SF활극으로부터 벗어나는 변별점이다.

‘1)공익을 위해 봉사한다. 2)시민을 보호한다. 3)법을 준수한다’는 3가지 수칙이 로보캅에 입력돼 있다. 경찰의 본분에 다름 아닌 3가지 수칙은 오작동을 일으킬 일이 없다. 문제는 악당인 OCP 간부를 체포하려던 도중 발생한다. 3가지 수칙은 ‘OCP 직원에 대항하지 못한다’는 제4의 수칙 앞에서 무력해진다. 범죄율을 낮춘다는 이유로 경찰을 민영화했을 때, 또 민간 기업의 상위 조직원이 범죄자일 경우 강력한 로봇 경찰은 애먼 사람을 때려잡는 깡통 로봇 캅(짭새)으로 시민에게 위협적인 공권력으로 둔갑한다. 영화에서는 정체성을 찾으며 인간성을 회복한 로보캅-머피가 수칙 4에 저항하면서 거악을 제거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경찰은 검경 수사권 분리법을 감당하지 못하고 검찰의 하위 기관으로 전락했다. 일선 경찰들의 거센 저항에도 행정안전부 산하 치안국이 설치되고 과거 행적이 의심되는 김순호씨가 임명되면서 경찰의 위상은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경찰은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급조된 것으로 의심되는 ‘경찰 미래비전 2050’을 발표했다. 혁신 선도 과학치안, 약자 보호 안전사회, 공정하고 차별 없는 신뢰국가, 최상 치안역량 확보, 미래 적응력 제고 등 5가지 전략방향을 제시했다.

당연한 내용을 담은 공허한 선전이었음이 몇 달 뒤 밝혀졌다. 이태원에 수십만명이 모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찰은 방관했고 대부분 젊은이였던 국민들이 죽었다.

‘경찰 미래비전 2050’에는 단기 과제로 근력증강 슈트, 저위험 장비 개발, 자율주행 순찰차 도입, 무인 순찰로봇을 도입할 계획도 포함돼 있다. 로보캅이 되겠다는 의지의 천명인가? 최첨단 장비가 구비되지 않아도 경찰은 이미 로보캅이니 탱글탱글하지 못한 경제 상황에서 예산 낭비할 생각 마시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인선 문제의 내막을 보면 경찰은 검찰이 조종하는 로보캅이 확실한 것 같으니 그저 닦고 조이고 기름 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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