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과 종전

최성용 청년연구자

냉전의 망령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소위 신냉전 얘기가 아니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의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기념식 축사가 그러하다. 그는 문재인 정부를 두고 “반국가세력”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이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이며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된 가짜평화 주장”이었다고 했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최성용 청년연구자

놀라운 언설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구사하는 언어는 정확히 냉전시대의 유산에 기대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로 선출된 정부 및 야당을 불구대천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냉전적 사고의 전형이다.

우선 “반국가세력”은 법적으로 규정된 ‘반국가단체’를 연상하기에 충분한 단어다. 국가보안법 제2조는 ‘반국가단체’를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1925년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전신으로 하며 1948년 제주4·3 및 여순사건을 계기로 제정되었다. 당시는 아직 한국전쟁이 시작되지도 않은, 냉전이 시작되던 시기였고 그런 의미에서 국가보안법은 이후 전개될 전 지구적 냉전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이후 국가보안법은 ‘평시의 계엄령’으로서 시민들을 억압하며 ‘빨갱이’라는 내부의 적을 만드는 핵심적 제도로 기능해 왔다. 학자들은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을 오래도록 지적해 왔지만, 국가보안법의 세계관에 익숙한 검찰 출신 윤 대통령은 놀랍게도 지난 정부가 마치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것처럼 보고 있는 듯하다.

유엔군사령부도 한국전쟁의 망령 중 하나다. 유엔사는 1950년 7월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84호를 바탕으로 미군의 지휘 아래 북한의 침략에 대한 군사적 제재에 참여하는 다국적군으로 결성되었다. 전쟁 이후에도 정전협정 당사자로서 협정 준수 및 이행의 책임을 지고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애초에 정전협정은 외국 군대의 철수를 비롯해 국제법적 관례에 따라 ‘정전’ 다음 순서인 ‘종전’을 위한 회담을 열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성사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정전상태를 한시적으로 관리할 유엔사가 70년 넘게 존속해 왔다.

유엔사의 모호한 국제법적 지위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다. 유엔사는 유엔 깃발을 내걸고 있지만 정작 유엔의 통제를 받지도, 유엔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이미 1975년 유엔총회 결의안 제3390호를 통해 유엔사 해체를 결의하였으나, 지금도 유엔사는 한반도에서 비무장지대를 관리하며, 일본에 유엔사 후방기지를 두어 한·미·일 안보동맹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가 이 근거 없는 유엔사의 존립 근거다.

종전선언이 곧 유엔사의 해체이자 북의 침략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대통령의 논리에는 부동의 전제가 하나 있다. 북한은 언제든 침략할지 모를 ‘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70년 넘게 전쟁상태인 한반도의 현 상황을 변경하려는 모든 시도를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으며 냉전의 유산을 고집하고 있다. 적대적 태도가 곧 안보라 믿고, 그러한 안보가 평화를 유지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역설적으로 한반도 전쟁 위기는 더욱 고조되는 중이다.

윤 대통령은 안보와 종전을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보지만, 그것이 평범한 시민들의 관점은 아니다. 시민들에게는 새벽에 ‘대피하라’는 재난문자가 날아올지도 모를 일상을 계속 유지할 것이냐의 문제다. 즉, 정전이냐 종전이냐의 문제다. 물론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들이 안심하고 일상의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대통령에게는 어두운 냉전의 과거를 대면하여 당면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평화의 미래를 열어갈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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