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젊은 선거구’라는 특징 하나 보고 화성을에 뛰어든 이준석 대표의 도전은 실패가 예정된 객기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선거 운동 초기 1위를 달린 공영운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20%포인트 이상이었다. 한 달여 만에 이 격차를 따라잡은 비결은 두고두고 들여다볼 만한 연구 대상이다.”
한국일보 기자 송용창이 총선 직후 칼럼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준석의 지역맞춤형 공약, 주민밀착형 행보, 정치에 대한 열정을 높게 평가했는데,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이 칼럼은 성공의 정치적 맥락은 다루지 않았기에 그걸 좀 보완해보자. 내 주장은 이준석의 당선은 8할이 대통령 윤석열 덕분이었으며, 이는 현 한국 정치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기사에서 한국일보가 인터뷰한 ‘3040 국민의힘 낙선자’들이 여당 참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 건 ‘국민 눈높이’를 무시한 윤석열의 국정 운영이다. “저 같은 피라미나 한동훈 위원장이 아무리 물질을 해도, 고래가 한 번 ‘훅’ 해버리면 어떻게 바꿀 수가 없더라고요.” 고래의 몸짓은 그 어떤 몸부림도 소용없게 만든 ‘총선 블랙홀’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고래는 바로 윤석열이다.
윤석열은 상상을 초월하는 둔감함으로 총선 막판에 유권자들의 분노를 유발할 일들을 집중적으로 저지름으로써 민주당의 대승을 도운 특급 도우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의 지지율을 압도하던 상황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졌지만 연이은 고래의 몸짓으로 인해 한 달여 만에 낙선의 수렁으로 떨어진 국민의힘 후보는 수십명에 이를 것이다. 반면 그 몸짓의 집단적 수혜자인 민주당 후보가 아니면서도 그 수혜를 크게 본 후보가 있었으니, 그 주인공이 바로 이준석이다.
이준석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감을 거저 챙긴 건 아니었다. 그 감이 자신의 입속으로 떨어지게끔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노력의 핵심은 바로 ‘윤석열 때리기’의 수준을 넘어선 ‘윤석열 죽이기’ 담론이었다. 독립연구자 박권일은 “이번 총선도 ‘르상티망’(원한 감정)이 주도했다”며 “누군가가 싫어서 투표하는 사람은 그를 가장 아프게 찌를 칼에 투표한다”고 했다. 어떤 칼이 윤석열을 가장 아프게 찌를 수 있는가? 야권 정당들 사이에서 이런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는데, 비록 덩치는 작았을망정 가장 아프게 찌를 것 같은 칼은 단연 윤석열에 대한 증오와 혐오의 극한을 보여준 이준석과 개혁신당이었다.
선거 기간 중 이준석이 생산해낸 ‘윤석열 죽이기’ 담론을 몇가지 감상해보자. 3월18일 이준석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호주대사 이종섭은 ‘종범’일 뿐이며, “주범은 (…) 윤 대통령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확신에 찬 단언을 하다니! 나중에 실제로 그렇게 될지언정 그 시점에서 자신의 소망을 그렇게 드러내도 괜찮은 것이었을까? 그러나 그게 윤석열 증오·혐오의 열기가 하늘을 찌르던 상황에서 그가 당선될 수 있었던 비결인 걸 어이하랴.
나는 윤석열과 이준석의 충돌 원인은 ‘권위주의적 나르시시즘’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놀라울 정도로 똑같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증오·혐오의 감정을 키우는 데 있어서 두 사람은 상대를 극단적으로 과대평가했다. 둘 다 문제가 있었지만, 선거라고 하는 타이밍은 이준석의 편이었다. 이준석은 3월22일 한겨레 인터뷰에선 “윤 대통령이 가장 싫어할 정권 심판 세력은 개혁신당”이라고 했고, KBS 라디오에 출연해선 “윤 대통령에게 린치당한 내가 화성을에 당선되는 게 정권 심판”이라고 했다.
3월25일 이준석과 캠페인 듀오를 형성한 개혁신당 비례대표 2번이자 총괄선대위원장인 천하람도 본격적인 ‘윤석열 죽이기’에 뛰어들었다. 그는 중앙선대위 슬로건 발표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가 하는 꼴을 보면 내일이 더 두렵다”며 “폭력배 정치를 하는 조폭정권”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꼴에 자기 식구는 끔찍하게 챙긴다”고 윤석열에 날을 세우더니, 이준석을 ‘윤 대통령의 주적’으로 표현하며 “겪어봤기에 더 강력하게 (윤 대통령에) 맞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3월27일 천하람은 MBC 라디오에서 “지금 윤석열 정권 하는 꼴을 보면 박정훈 대령의 일이라든지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의혹이라든지 탄핵 사유가 될 만한 부분들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며 “그런 부분들이 확인된다면 저희도 당연히 탄핵 추진에 동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젊은 세대와 국민을 속여 집권한 후 조폭정권이 된 윤석열 정권은 타도의 대상”이라고 했다.
4월9일 동탄 롯데백화점 인근 광장에서 진행한 ‘파이널 집중 유세’에서 이준석의 마지막 호소는 “누가 당선돼야 윤석열 대통령께서 좋아하는 약주, 술맛이 제일 떨어질까”였다. 4월10일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머쥔 이준석은 다음날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음 대선이 몇년 남았죠? (3년이) 확실합니까?”라고 물었고, 12일엔 TV조선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우리는 너무 선명한 ‘반윤’ 성향”이라면서 “제가 야당으로서 하는 외부 총질은 훨씬 셀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국회의원 배지를 가장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선거 운동을 하면서 어려웠을 때 누구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냐”는 질문에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야심만만한 이준석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통령이다. 그런데 그가 민주당 후보가 될 수는 없으며, 개혁신당 후보라는 간판은 너무 약하다. 훗날에라도 국민의힘 후보가 될 수 있을까? 어렵다. 지난 2년 가까이 윤석열에 대해 비판, 아니 ‘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독한 비난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비난은 거칠기만 한 게 아니라 듣는 이의 분노 폭발을 위해 창의적인 조롱을 곁들였다.
이준석은 윤석열을 개고기를 양고기라고 속이고, 녹슨 수도꼭지를 금 수도꼭지라고 속여서 팔아먹은 사람으로 비난했으며, 그의 개업 100일 실적에 100점 만점에 25점을 주었다. 윤석열은 경기 시작 전 옆구리를 칼로 푹 찌르고 시작하는 코모두스였으며, 공포로 억압하는 절대자이자 신군부였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희대의 악당 엄석대라는 게 이준석의 주장이었다. 이준석은 “대한민국 수장은 미친X”이라고 욕했고, “내가 환자 같냐? 진짜 환자는 서울에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총선은 거악과의 경쟁”이라며 “국민이 제일 싫어하는 거악은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이 모든 게 윤석열을 겨냥한 비난이었다지만, 대부분 국민의힘에 대한 조롱이자 욕이기도 했다. 그래서 국민의힘 쪽에선 “이준석은 보수우파가 영원히 폐기처분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준석이 국민의힘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길은 없단 말인가? 그렇진 않다. 딱 한 가지 비법이 있는데, 그건 바로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폐기처분’하게 만드는 것이다. 탄핵이건 타도건 그 어떤 방식이건 윤석열이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져야 국민의힘에서 이준석에 대한 재평가가 가능해진다.
4월17일 박영선·양정철의 국무총리·비서실장 기용설이 나오자, 이준석은 “이제야 왜 취임 초기부터 보수 계열 인사들을 당내에서 그렇게 탄압해오고 내쫓았는지 알겠다”고 했고, 천하람은 윤석열·김건희의 정치적 뿌리는 ‘친문재인’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내쫓아야 한다는 주장을 위한 예비 작업인가? 두 사람의 손발이 척척 맞는 게 재미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시나리오인가? 이준석의 ‘실패가 예정된 객기’를 화려한 성공 미담으로 만들어준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윤석열 아닌가. 총선 참패 직후 윤석열이 보인 일련의 행태는 이준석의 ‘윤석열 죽이기’ 프로젝트가 황당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시사해준다. 게다가 공동 목표를 갖고 있는 이재명·조국이라는 막강한 우군이 있잖은가. 이 삼각공조 체제는 앞으로 활발하게 가동될 것이다.
비극이다. 이준석은 국민의힘에 ‘유혈입성’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했던 만큼 내분, 아니 내전을 치르느라 국민의힘은 더욱 망가질 것이다. 두 사람의 악연은 보수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진보의 비극이기도 하다. 아니 이 나라의 비극이다. 여당의 몰락 위에서 질주하는 야당은 맹종과 아첨이 난무하는 사당(私黨)으로 전락한다 해도 정치적 성공과 번영은 계속 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