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시대 ‘흔들리는 경제’…피할 새도 없이 떨어진 ‘고금리 폭탄’

박채영 기자

시민의 삶을 바꾼 고금리

그래픽 | 윤여경 기자

그래픽 | 윤여경 기자

주담대·마이너스통장·신용대출…
코로나19 겪으며 저금리로 빌린 돈
기준금리 3%로 오르며 ‘빚 부메랑’
연내 주담대 금리는 8%대 전망도

“요즘 금리가 올라서 투잡 많이 늘었다고 하잖아요. 그게 저예요.”

중견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김모씨(42)는 무거워진 이자 부담에 최근 투잡을 시작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8시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뒤 오후 7시부터 밤 12시까지 대리운전을 뛴다. 주택담보대출부터 마이너스통장까지 4억원가량의 빚이 있는데, 금리가 오른 만큼 김씨가 감당해야 하는 이자도 불어서 월급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투잡을 하고부터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줄었고 체력적으로도 힘들다”며 “대출이자만 아니면 투잡을 안 하고 싶지만 앞으로 꼬박 4년은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함께 왔던 유동성 파티가 끝나자마자 눈앞에 닥친 고금리가 일상을 바꾸고 있다. 주택구입 자금 마련을 위해 빚을 냈던 ‘영끌’ 직장인은 투잡을 뛰고, 가상통화 활황기에 코인 투자에 뛰어들었던 청년은 감당할 수 없는 빚에 카드 현금서비스 돌려막는 방법마저 배우야 할 처지가 됐다. 대출로 코로나19 거리 두기를 버텼던 자영업자들도 코로나로 인한 피해를 채 회복하기도 전에 고금리에 2연타를 맞았다.

금리 인상에 ‘발등에 불’ 영끌족·빚투족

치솟는 금리에 ‘영끌족’, ‘빚투족’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김씨도 약 4억원의 빚 중 2억5000만원은 집을 사면서 받은 주택담보대출이다. 집이 있었지만 조금 더 넓은 평수로 옮기고 싶어서 2년 전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이외에도 주식투자를 위해 만든 1억원짜리 마이너스 통장, 자동차 구입을 위해 받은 대출 4000만원이 있다.

대출을 받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올 줄 몰랐지만, 주요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돈줄을 죄고,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10여년 만에 3.0%까지 올리면서 대출금리가 치솟기 시작했다. 김씨도 2~3%대를 오가던 마이너스통장 금리가 6.6%까지 상승하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비슷한 수준으로 올랐다. 이자가 무섭게 불어서 지금은 한 달에 나가는 원리금만 200만원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코픽스 기준)는 연 4.970∼7.499%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말 연 3.710∼5.070%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단이 2%포인트 넘게 올랐다. 금융권에서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내에 8%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씨는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견디고 있지만 투잡을 계속하면 너무 힘들 것 같다”며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상황이 언제쯤 나아질지 아무도 예상을 못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서민 대출상품인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전·월세를 사는 청년층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정모씨(28)는 올해 4월 6개월 변동금리로 전세자금대출을 받았다. 청년 우대를 받아 지난 4월에만 해도 2%대였던 금리는 6개월이 지나자 4%를 넘었다. 정씨는 “한 달에 부담해야 하는 이자가 원래 18만원 정도였는데, 30만원까지 늘었다”며 “금리가 뛰면서 졸지에 월세를 내면서 살게 됐다“고 말했다.

코인·주식은 떨어지고 남은 것은 빚

캠핑 유튜버를 꿈꾸며 유튜브를 시작한 서우재씨(29)는 지금은 ‘#빚갚기 브이로그’를 하고 있다. 캠핑과 트래킹 영상이 올라오던 서씨의 유튜브 채널은 이제 ‘1000만원 돌려막기’, ‘한 끼 식사 1000원으로 해결하기’, ‘하루 11시간 배달하기’ 등의 영상이 올라온다.

가상통화 투자에 너무 깊게 빠져든 것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딱 500만원만 들고 투자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빚까지 져서 한 종목에만 1700만원을 투자한 상태였다. 한때 비트코인이 8000만원까지 오르면서 수익을 보기도 했지만,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강도 높은 긴축에 나선 뒤 가상통화 시장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서씨의 손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투자를 계속했지만 메꿔야 할 손실만 늘었다. 비트코인 선물에 마지막으로 크게 한 번 투자했다가 청산을 당했다.

빚투 끝에 남은 것은 2900만원의 대출이었다. 대출 규모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금리가 19.9%에 달하고 두 달 안에 갚아야 하는 카드사 현금서비스를 1700만원이나 받은 것이 복병이었다. 지난 7월에는 현금서비스를 포함해 당장 내야 하는 원리금이 1000만원에 달했다. 하루에 11시간 배달일을 해도 다 갚을 수가 없어서 ‘현금서비스 돌려막기’를 하며 부족한 돈을 메꿨다. 카드 현금서비스 만기가 돌아오면 또다시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일단 돌려막는 식이다. 현금서비스를 다시 받을 때마다 19.9%씩 이자가 붙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

서씨와 같은 20대 청년이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에서 받은 대출 규모는 최근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대의 가계대출은 올해 6월 말 기준 95조6503억원으로 지난해 말 95조2127억원에 비해 0.46%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제2금융권 대출은 26조5587억원에서 27조6690억원으로 4.18%나 증가했다. 은행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20대가 제2금융권으로 옮겨간 것으로 풀이된다.

상황이 더 악화돼 불법 사금융을 찾는 청년들도 있다. 가상통화 투자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생겨서 개인회생 중인 A씨(23)는 최근 ‘대출나라’에 급전 20만원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대부업 중계 플랫폼 대출나라는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이 글을 올리면 조건에 맞는 대부업자가 연락을 취해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법정 최고금리를 넘는 이자를 요구하는 불법 사금융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A씨도 대출 플랫폼의 실태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금융권 대출이 쉽지 않은 A씨에게 돈을 빌려줬던 지인이 ‘당장 갚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독촉을 해 마음이 급한 상황이었다. A씨는 “전에도 대출나라를 통해 불법사금융을 써본 적이 있다”며 “30만원을 빌렸더니 일주일 후에 50만원을 요구했다. 돈을 빌려주면서 가족과 지인의 연락처와 최근 대화 내역까지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너무 급해서 미쳤던 것 같다”며 “이번에는 상황을 알게 된 부모님이 도움을 주셔서 다행히 대출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투잡·돌려막기·불법 사금융까지
빚 부담 시달리는 시민들 삶 ‘팍팍’
“손실보상금 적어 대출 점점 늘어”
“정부, 금리 인상밖에 할 수 없나”

코로나 회복도 못했는데 ‘금리인상 2연타’

빚을 내서 코로나19 터널을 지나온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도 전에 급격한 금리 인상에 또 한 번 타격을 입고 있다. 서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성모씨(46)도 약 4억7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주택 구입을 위해 받은 2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빼면 코로나19를 버티기 위해 받은 대출이 2억7000만원가량이다. 코로나19 기간을 거치면서 2021년 1월, 7월 올해 4월에 대출을 받았고 최근에도 2000만원을 더 받았다.

성씨는 “손실보상금은 정말 코딱지만큼이라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려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며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다 보니 대출이 점점 늘었다”고 말했다. 대출을 더 받은 데다 금리까지 오르면서 성씨가 한 달에 부담하는 원리금은 연초보다 40만원 정도 많아져 230만원까지 늘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자영업자들의 대출 규모가 증가한 상황에서 고금리까지 더해지며 자영업자들이 안고 가야 하는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김회재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994조2000억원이다. 2019년 말(684조9000억원)보다 309조3000억원 늘었다. 한국은행은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대출금리가 1.5%포인트 오르면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이 10조8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6월 말 자영업자 차주(대출받은 사람)가 306만8000명인 것을 고려하면 이자 부담이 1인당 평균 351만원 증가하는 셈이다.

성씨는 “대출로 대출을 메꾸면서 버티고 있지만 이제는 정말 턱밑까지 왔다”며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 집을 팔고 외곽으로 이사 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예전에 자산관리사를 했던 다른 가게 사장님한테 ‘금리 인상이 유일한 타개책인지’ 물어봤다”며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금리를 올리는 것밖에 없는 것인지, 우리는 어디에 기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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