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 눈치만 본 한명숙, 김용민에…

소위 ‘막말 열사’ 김용민의 이적행위 때문이었을까, ‘선거의 여왕’ 박근혜의 놀라운 능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지역주의의 강고한 벽이 유별나게 힘을 발휘한 탓일까.

새누리당의 승리와 민주통합당의 패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승패를 떠나서 다시 한번 정치가 문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당명을 왜 그지 자주 바꾸는지, 이 당이 저 당 같고 도무지 헷갈린다. 사실 이 당이나 저 당이나 다를 게 없긴 하다. 이긴 당과 진 당만 있을 뿐.)

‘4대강’, 민간인 불법 사찰 등 이명박 정권은 분명 심판받아야 할 정권이었다. 하지만 MB심판론은 먹히지 않았다. 소위 프레임 전쟁에서 야당은 여당에 밀렸다. 대체로 차려놓은 밥상으로 예상된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무기력하게 무너진 데는 기본적으로 여당에 비해 무능한 리더십과 안이한 현실인식 등이 거론되겠다. 대목을 맞은 이른바 정치평론가들이 정치공학 운운하면서 ‘나이브’한 한명숙을 공격하는 장면이 안 봐도 선하다.

‘나꼼수’ 눈치만 본 한명숙, 김용민에…

맞다. 한명숙은 글러먹었다. 애초에 싸움꾼 박근혜의 맞수로선 많이 부족했다. 강단도 없고, 흐름도 모르고, 대충대충 가다보면 떡 하고 승리가 굴러들어올 줄 알았을까. 대충 이런 식으로 욕을 해댈 것이다. 여기에다 당운영과 공천문제, 심지어 눈물을 보인 사소한 행적까지 들먹일 게다. 더구나 분명 결과론이지만 나꼼수 진행자 김용민의 막말파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까지 어리버리한 처신에 대해 비난할 게 확실하다.

한명숙이 욕 먹는 건 싸다. 좌와 우에 고루 퍼진 일부 세력으로부턴 거의 부관참시 당할 지경인 김용민도 두고두고 욕을 얻어먹을 테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그들이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그들이 소속된 정당이 새누리당에 패해서가 아니다. 사실 두 정당 간에는 ‘왜 합당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유사성이 많다. 굳이 구분하자면 독재정권의 후신인 수구적 보수와 ‘나름’ 개혁적 보수 정도일까. 다시 한명숙과 김용민에게 돌아가면, 그들은 자신들이 왜 정치를 하는지 망각했다는 데 욕을 먹어야 할 본질적 이유가 존재한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는 자신이 왜 정치하는지 뚜렷하게 자각한다. 쿠데타로 집권한 아버지와 달리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의식이다. 솔직한 권력의지다. 한명숙은 ‘나름’ 개혁적 보수주의자로서 아마도 노골적 권력의지를 갖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초 의도했음직한 개혁의지는 주변의 정치지형에서 생존하려다 보니 슬그머니 사라지고 대권도 아니고 알량한 권력을 적당하게 서로 나눠가지려다 보니 어느새 그저 그런 흔히 보는 정치가가 됐다.

한명숙의 적당 및 절충주의의 백미는 김용민이다. 사실 이번 총선 승패와 무관하게 김용민 공천은 공당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막말 파문이 터져나왔을 때 조기 진화에 실패한 게 패인이라는 식의 논리는 선거꾼들이나 하는 얘기다. 승패를 떠나 더 이상 정치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한명숙은 단호해야 했다. 한데 한명숙은 우유부단했고, 걱정만 했으며, 나꼼수 눈치만 봤다.

더 큰 문제는 물론 김용민이다. 하도 돌을 던져서 이미 돌무덤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에게 또 하나의 돌을 더하는 비루함을 무릅쓰는 이유는, 그가 적들을 공격할 때 뼈 아프게 지적한 그 흠결이 자신에게 나타났을 땐 다른 논리를 적용하는 이중성 때문이다. 항상 나는 옳고 항상 너는 틀렸다는 있을 수 없다. 그런 논리는 파시스트나 쓰는 법이다. 진보의 덕목은 개방성과 수용성이다. “우리가 나꼼수를 왜 했는지”를 정말 제대로 인식했다면 김용민은 막말 파문 초기에 사퇴했어야 했다.

공적 영역으로 진입할 때 컴퓨터 리셋하듯이 모든 사적 영역의 기억을 무로 만들 수는 없다. 공인이 되려고 하면 사적인 흔적까지 공적으로 검증받을 수밖에 없다. 명예로운 퇴각은 그가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 이유가 MB심판이었기 때문에 더 절실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듯 단지 금배지를 다는 게 그에게 유일한 꿈이었다면 김용민의 완주는 (욕하면서도) 이해될 수 있었겠지만, 금배지 너머에 목표를 두었다고 공언한 사람이었기에 이해되지 않는다.

한명숙과 김용민의 문제점은 그들이 그들만의 리그에 매몰돼 왜 정치를 하려고 했는지 최초의 명문을 망각했다는 데 있다. 사실 그들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명분 같은 걸 장신구로 단 채 권력의 말석에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이 공약집에 써놓은 미사여구를 믿는 국민은 한 명도 없다. (그런데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중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권위를 구하고, 대중이 아니라 특정 리그에서 권력을 창출하고 스스로 권력화하는 정치가들의 보편적 행태에서 한명숙과 김용민은 자유로운가. 그저 정치혐오를 확산키는 데 적잖게 일조하고 만 것이 아닌가. 다른 노회한 정치인들에 비해 어쩌면 순수한 편인 두 사람은 억울할 수 있겠다. 왜 자기들만 욕을 먹어야 하느냐고. 몰랐나? 정치가는 결과로 평가받는 걸.

안치용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 소장/eriss.tistory.com
(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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