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아이들이 재잘대는 이곳, 경로당입니다

김보미 기자
서울 마포구 망원2동1경로당 2층에 마련된 ‘초록북카페’에서 지난 2일 오후 근처 초등학교 학생들은 숙제를 하고 어르신들은 신문을 보고 있다. 김보미 기자

서울 마포구 망원2동1경로당 2층에 마련된 ‘초록북카페’에서 지난 2일 오후 근처 초등학교 학생들은 숙제를 하고 어르신들은 신문을 보고 있다. 김보미 기자

서울 750여곳 ‘개방형’ 전환
마포 망원동 ‘초록북카페’ 등
2층은 주민에…저녁엔 돌봄

“공유공간으로 삶의 질 높여”

지난 2일 오후 학교를 마친 초등학교 4학년 박은영·송지우양(가명)이 교문을 나와 길 건너 경로당으로 향했다. 건물 옆 계단을 따라 2층에 올라가 어르신들이 신문을 보고 있는 옆 탁자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각자 200~300원씩을 모금함에 넣고 코코아 한잔을 주문한다. 음료를 마시며 한 시간 남짓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었다.

두 친구가 일주일에 2~3번 들르는 이곳은 서울 마포구 망원2동1경로당이다. 어르신들이 할머니층(1층), 할아버지층(2층)으로 나눠 쓰던 것을 2016년부터 2층은 누구든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으로 개방했다. 덥고 추운 날씨를 피해 잠시 머물다 가도 된다.

대한노인회 마포지회에서 주민과 공유하는 경로당을 제안했고, 취지에 공감한 어르신들이 한 층을 내주며 마을회관 같은 ‘초록북카페’가 생겼다.

이창현 망원2동1경로당 회장(87)은 “우리가 사용하는 공간은 줄어들었지만 아이들 웃음소리가 곁에서 들리니 정서적으로 좋다”며 “같이 있는 어른이 아이가 다치지 않게 신경 쓴다”고 말했다.

대표적 ‘노인 공간’인 경로당이 최근 주민에게 문을 열어 지역 구심점이 된 사례가 늘고 있다. 공유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서울 시내에서 경로당의 활용도가 높아지면 커뮤니티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졌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의 경로당은 총 3484곳(2021년 12월 기준)으로 12만9916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이 가운데 ‘개방형’은 750여곳이다.

초록북카페가 있는 마포구는 158곳 중 27곳이 개방형이다. 공덕동 아현1동경로당도 오후 6~10시 지역 아이들의 돌봄교실로 지난 3년간 운영된 바 있다. 당시 주민자치위원들이 돌아가며 저녁을 챙기고, 영어·요리·공예 수업을 열어 퇴근이 늦은 인근 맞벌이 가구가 잠깐 아이를 맡기는 ‘비빌 언덕’이 됐다.

경로당에 지역 아동 돌봄 가능성을 가장 먼저 결합한 곳은 강동구의 ‘꿈미소’다. 구청에서 경로당을 리모델링해 어르신과 아이들의 공동공간으로 구성을 바꿀 수 있도록 자원을 투입한다.

민간 위탁으로 오후 4~10시 센터장과 교사 3명이 배치돼 아동·청소년의 자치활동을 돕는데, 조례에 따라 자치구가 재원을 부담해 이용료가 무료다. 2017년부터 총 12개 경로당이 ‘꿈미소’가 됐다.

상계9단지 경로당의 경우 지난 9월부터 매주 목요일 동네 어르신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함께 식당’이 됐다. 회원과 비회원을 나누지 않고 누구나 한끼 같이 먹는 마을 식당인 셈이다.

운영에 참여한 ‘함께돌봄’ 사회적협동조합의 강봉심 이사는 “고령층 1인 가구가 많은 지역 특성에 맞춰 먹거리 영양과 심리적 안정을 찾자는 취지로 어르신들이 경로당을 개방했다”고 말했다.

특히 경로당 개방은 지역자원을 모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망원2동에선 아동 서적 300권을 주민이 기증했다. 또 내년부터 북카페 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지역 노인 일자리사업과 연계한다. 아현1동에서는 일본에서 귀화한 주민자치위원이 원어민 어학 수업을 진행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65세 이상 회원에게만 폐쇄적으로 입장이 허용됐던 경로당이 개방됐다고 해서 선뜻 들어가기 쉽지는 않다. 폐쇄적인 기존 문화와 구성원 특성에 맞춰 더 정교한 정책이 필요한 부분이다.

강 이사는 “함께한 기간이 축적돼야 하고, 지역자원이 들어왔을 때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것을 인식하면 개방하는 경로당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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