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영정에 바친 카네이션

조형국·박은하 기자

스승의날 안산 합동분향소

“천국에서도 담임 해주시길”… 유가족 70여명도 분향

안산 초·중·고 교사들, 숨진 동료 추모 촛불집회 열어

스승의날인 15일, 스승도 제자도 학부모도 울었다.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지 못해 영정에 바쳐야 했다. 유가족의 검은 옷에 대신 꽃이 달렸다.

이날 아침부터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 조문객들이 찾아왔다. 환한 국화 사이로 붉은 카네이션이 곳곳에 꽂혀 있었다. 스승에게 보낸 듯한 봉투에 넣은 편지도 보였다. 글이 보이는 편지도 예닐곱 통이 있었다. “늘 장난만 쳐 죄송해요. 선생님과 짜장면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결국 못 갔네요.” 장난이 많은 것 같은 이 학생의 글씨는 단정했다. 졸업생이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도 있었다. “5년간 한번도 찾아뵙지 못했는데 이제야 찾아뵙게 돼 정말 죄송해요. 졸업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너무 슬프고 죄송합니다.”

오전 11시20분. 단원고 희생자 학부모 70여명이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한 손엔 손수건을, 한 손엔 하얀 국화를 들고 분향소로 들어선 가족들은 영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김병권 가족대책위원장은 대표로 나서 분향하고 고개를 숙였다.

<b>하늘로 보낸 편지 “늘 장난만 쳐서 죄송해요….”</b> 제자가 스승의 영정에 바친 편지에는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스승의날인 15일 경기 안산시 정부 합동분향소의 단원고 교사들 영정 앞에 제자들의 감사의 마음이 담긴 편지와 카네이션이 놓여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하늘로 보낸 편지 “늘 장난만 쳐서 죄송해요….” 제자가 스승의 영정에 바친 편지에는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스승의날인 15일 경기 안산시 정부 합동분향소의 단원고 교사들 영정 앞에 제자들의 감사의 마음이 담긴 편지와 카네이션이 놓여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일부 유가족들은 분향소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매일 분향소를 찾는 가족도 있지만, 차마 발길이 향하지 않아 일부러 오지 않았던 부모들도 있었다. “며칠 만에 오는지 모르겠다”며 분향소 입구에서 망설이던 한 어머니는 “선생님들 영정에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라는 다른 학부모의 설득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납덩이를 달아놓은 듯 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유가족 한 명이 교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엄마 아빠가 지켜주지 못한 자리를 끝까지 지켜주신 은혜를 잊지 못합니다. 제자에 대한 애정과 스승으로서의 책임감에 저희 부모들은 그저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곳에서도 저희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아주시고, 꿈에서라도 환하게 웃고 계시기를 기도합니다.”

낭독이 끝나자마자 교사 유가족들이 눈물을 쏟아냈다. 강민규 교감을 시작으로 박육근, 이해봉, 남윤철, 최혜정, 이지혜, 김초원 교사의 영정에 카네이션이 올랐다. 학부모들은 교사들의 가슴에 달아주지 못한 카네이션을 교사 유가족의 가슴에 대신 달았다. 학부모도, 교사 유가족도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카네이션도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받았다. 깊고 슬픈 울음이었다.

교사 유가족들은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김빛나라양(17)의 어머니는 “불러도 다시 못 올 우리 초원샘 잊지 않을게요. 천국에서도 2학년 3반 담임 해주시고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김응현 교사의 시신이 안치된 안산 제일장례식장은 이른 아침부터 동료 교사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였다. 김 교사는 학생들이 묵었던 곳 바로 옆인 4층에서 학생들의 탈출을 돕다 실종 상태였는데 지난 13일 발견됐다. 역시 교사인 아내와 중학생·고등학생인 아들들이 상주로 빈소를 지켰다. 고인의 맏형은 “5남매 중 막내였다. 꼼꼼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교사로서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는 11살 차이라 스무살 될 때까지 ‘애기’라 불렀다”며 “진도에 4번이나 내려갔다. 처음에는 살리고 싶었고 나중에는 꺼내고 싶었고. 지금은 차마 말로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이 장례식장에는 또 다른 단원고 학생의 시신이 안치됐다. 설운 울음소리가 바닥에 깔렸다. 이날 저녁 교사들의 추모 촛불집회도 열렸다. 안산 지역 초·중·고 교사 200여명은 이날 오후 7시30분 안산 문화광장에 모여 숨진 동료를 추모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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