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익·편견 우려” 슬픔도 억누르는 이주민들

안산 | 조형국·박은하 기자

다문화가정 자녀 등 7명 희생… 안산 원곡동 ‘숨죽인 추모’

“희생자 생각 땐 마음 아파 고향의 또래 아들 떠올라”

빠듯한 생활에 주변 눈치 말 아끼고 “매일 기도”뿐

세월호 사고 한 달째인 15일. 안산시에서도 이주민이 많이 사는 곳으로 알려진 원곡동 다문화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상인들은 좌판을 펼치고 먹을거리를 팔았다. 중국식 부침개, 호떡, 양꼬치 노점들이 늘어선 골목 사이로 공장 노동자들은 잰걸음으로 일터로 향했다.

세월호 사고로 안산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 자녀 3명이 희생됐지만 이 거리에서 애도의 분위기는 쉽게 모이지 않았다. 하루하루 빠듯한 생활에다 외국인이 나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한국 정서상 현실적으로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문화거리 골목 곳곳에는 “세월호 사고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추모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같은 처지의 다문화가정에서 희생자가 발생한 것도 안타깝지만 그들은 무엇보다도 더불어 살고 있는 한국 국민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어 했다.

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인 사미(42)는 “희생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너무 늦은 시간이라 추모 행사에 가긴 어렵다. 슬픔을 나누고 싶어 매일 밤 기도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온 권지숙씨(46)는 “고향에 있는 둘째 아들이 같은 또래다. 직장 동료들과 세월호 사고를 말할 때마다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고 말했다.

일 때문에 낮이나 이른 저녁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이주민들은 밤늦게 분향소를 찾고 있다. 한글 야학 ‘너머’에서 한글을 배우는 고려인들은 지난주까지 여러 차례 오후 11시30분부터 다음날 0시30분까지 안산 합동분향소에 들러 조문을 했다.

이들이 추모행렬에 앞장서지 못하는 것은 바쁜 생활 외에 이주민들에 대한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이주민들은 혹여 자신의 말과 행동이 불필요한 오해를 부르지 않을까 걱정돼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강희숙 안산이주민센터 교육팀장은 “이주민도 한국 사람들처럼 슬퍼하고 있지만 주변 눈치를 많이 본다”며 “다문화에 대한 편견이 이주민들의 애도 표현마저 억누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웃에 피해자가 있지만 책임을 가리고 원인을 규명하라는 요구는 이들에겐 부담이다. 주장을 세우거나 집단행동을 했을 때 국가로부터 받을지 모르는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김영숙 너머 활동가는 “특히 미등록 상태거나 강제이주의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은 정부에 대한 비판에 동조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안산에 사는 이주민들은 지난 3월 기준으로 6만4700여명이다. 미등록 이주민 수를 합치면 약 7만명으로 추정돼 안산시 전체 인구(76만2915명)의 약 10%에 달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중에는 단원고에 다니던 다문화가정 자녀 3명이 포함됐으며 귀화한 베트남 여성 1명, 취업을 위해 방한한 중국 교포 3명 등도 주검으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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