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 울음소리 떠올라…가게 열고 자리만 지켜”

김세훈·이유진 기자

추모와 생계 사이…다시 불 밝힌 이태원 상인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한 건물에 지난 13일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홍보 간판이 걸려 있다. 김세훈 기자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한 건물에 지난 13일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홍보 간판이 걸려 있다. 김세훈 기자

참사 후 매출 70~80% 줄어
아쉬운 소리조차 내지 못해
한산한 거리 “상권 살리자”
일부러 찾아오는 방문객도

지난 13일 오후 6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는 다소 한산했다. 평소라면 주말 저녁을 맞아 이국적인 음식을 즐기려는 방문객으로 붐볐을 시간이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사고 현장과 T자로 마주한 이 거리엔 음식점 50여개가 300m 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다.

가게 스피커를 타고 인기 그룹 방탄소년단의 곡 ‘다이너마이트’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일부 유명 식당을 제외하곤 가게마다 빈 테이블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몇몇 클럽은 늦은 시간까지도 문을 열지 않았다. ‘참사로 인해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적힌 A4용지가 한 클럽 문에 붙어 있었다.

몇몇 외국인 관광객은 이태원 관광특구홍보관 앞에 설치된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홍보 현수막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 외국인은 스마트폰을 들어 텅 빈 거리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이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인근 상인 A씨는 “코로나에서 조금 벗어나나 싶었는데 참사가 터져버렸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기자가 만난 이태원 상인들은 “(참사 전과 비교해) 매출이 70~80% 정도는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줄어든 매출에 한숨을 쉬면서도 참사에 따른 트라우마와 죄책감으로 아쉬운 소리를 입 밖에 내지 못했다. 한 식당 사장은 인터뷰 요청에 “상권이 완전히 죽은 상태다”라며 손을 내저었다.

경찰통제선이 걷힌 해밀톤호텔 옆 참사 발생 골목에는 상점 한 곳만 문을 열고 있었다. 10년 넘게 이 골목에 자리한 옷가게 ‘밀라노 콜렉션’ 사장 남인석씨(80)는 상가 불을 꺼둔 채 작은 조명등 하나에 의존했다. 지난 5일 국가애도기간은 끝났지만 전날에야 가게 문을 다시 열었다고 했다. 남씨는 “불을 켜놓고 물건을 판다는 것에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며 “가게를 닫고 쉬려고 해도 젊은 애들 울음소리, 살려달라는 소리가 떠올라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매달 임차료로 약 500만원을 내고 있다는 그는 “우리 고객은 특히 20대, 30대인데 지금 그 손님들이 어떻게 찾아오겠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 힘들다”며 한숨을 쉬었다.

참사 현장에서 일한 경찰·소방 공무원에게 무료로 음료를 제공해 화제가 된 ‘뚜레쥬르 이태원점’도 가게를 찾는 ‘발길’이 줄었다고 했다. 대신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원거리 주문이 늘었다. 아르바이트생 B씨는 “배달을 주문하면서 ‘기사 잘 봤다’ ‘많이 파세요’ 같은 메모를 남겨주시는 분들이 있다”며 “매장을 찾은 일부 손님 중엔 ‘그때 고마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다”고 했다.

이태원 거리 곳곳에 애도와 슬픔이 짙게 깔렸지만, 방문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이태원 상인들도 참사 트라우마와 생활고를 동시에 겪는 ‘2차 피해자’라며 이태원 상권 활성화를 도와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세계음식문화거리를 찾은 길고은씨(40)는 “상권이 너무 죽을 것 같아서 일부러 한 번 와봤다”고 말했다. 길씨는 “어려운 사람들은 도와주려는 게 한국 사람들 특징 아닌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상권을 살리자는 얘기가 나오는 만큼 젊은층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려고 노력할 것 같다”고 했다.

20대 남성 C씨도 “(이태원의) 이미지가 일시적으로 안 좋아졌지만 결국 다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임차료가 비싼 곳이라 상인들이 타격을 입을까 걱정이 된다”며 “시간이 되면 밥집 위주로 종종 들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참사 이후 매주 이태원을 찾는다는 대학생 김보름씨(22)는 “참사 책임을 상인들에게 돌리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분들도 일상을 살다 느닷없이 참사를 겪게 된 거 아니겠냐”고 했다. 그는 “이태원 일대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도 제가 할 수 있는 추모의 한 방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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