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감염 진원지 된 서울시내 백화점···직원들은 불안에 떤다

이혜리·김향미·고희진 기자

한 곳서 100명 넘게 확진···직원 사이 전파 두드러져

백화점 전체에 탈의실 하나···휴게실·식당 등 함께 사용

방역대책 없이 '정상영업' 급급···정부도 사실상 방치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본관에 10층 휴점 안내문이 게시돼있다. 신세계백화점은 10층 아동코너 판매사원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음에 따라 이날 해당 층을 휴업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본관에 10층 휴점 안내문이 게시돼있다. 신세계백화점은 10층 아동코너 판매사원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음에 따라 이날 해당 층을 휴업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서울시내 주요 백화점에서 직원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잇따르면서 백화점의 허술한 방역 대책과 취약한 근무환경이 도마위에 올랐다. 창문도 없는 실내공간에 불특정 다수가 밀집돼있어 감염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도 백화점들은 제대로 된 방역대책 없이 ‘정상영업’에만 급급하고, 정부도 사실상 이를 방치하고 있다. 감염에 취약한 환경에 대한 직원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랐지만 협력업체 소속이거나 파견직 등이 많다보니 제대로 된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47명, 여의도 더현대서울 7명,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 6명 등 이달 들어 3개 백화점에서 160명의 확진자가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경우 확진자의 70%, 여의도 더현대서울과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은 전원이 백화점에 근무하던 노동자다. ‘직원들 사이의 전파’가 두드러진다.

박영준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감염 확산과 관련해 “100명 넘게 한 직장에서 확산되는 것은 드문 사례”라며 “검사가 지연되고, 공용 공간에서 지속적인 노출이 있었다는 게 확진 규모가 커진 원인”이라고 말했다. 정작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전날 영업을 재개했다.

백화점은 고객에게 잠깐 들러 쇼핑하는 공간이지만, 직원들에겐 하루종일 근무하는 노동의 공간이다. 고객들을 직접 대면하며 판매업무를 하는 매장 직원들은 특히 불안에 떨고 있다. 유니폼을 입는 직원들은 락카룸(탈의실)을 사용하는데 통상 백화점 하나에 락카룸도 하나다. 직원 전체가 한 공간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특히 퇴근 시간엔 직원들이 동시에 락카룸으로 몰린다. 함께 사용하는 휴게실이나 식당, 화장실도 있다.

그러나 확진자가 나와도 협력업체 소속인 매장 직원들에게는 정확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 경기도의 한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직원 A씨는 “휴게실이나 락카, 식당은 공간도 협소한데다 직원들이 계속 접촉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확진자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확진자가 휴게실에 왔다갔다’는 이야기만 나오고 흐지부지 넘어가고 있다. 방역이 제대로 됐는지에 대해 전달받은 게 없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협력업체, 파견·용역 등 고용형태를 불문하고 사업장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에게 확진자 발생 사실을 즉시 알리도록 지침을 세웠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확진자 발생시 직원들의 선제 검사를 지원하기는 커녕, 대응방법은 백화점마다 다르다. 확진자가 나온 매장이나 층만 폐쇄하고 다른 매장, 층은 정상영업을 하기도 했다. 백화점 직원 B씨는 “확진자가 나왔는데 그 층을 폐쇄하지 않았고, 백화점 측에선 ‘몸에 이상이 있으면 검사를 받아보라’고만 전했다”며 “고객들에게는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말했다. B씨는 “공용공간을 같이 이용했던 직원들은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확진자가 전날 근무를 안했다면서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넘어갔다”며 “겁이 난다”고 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전날 연 기자회견에서 백화점 측이 공지를 하지 않아 직원들이 관할지역 구청에서 보내는 재난 알림 문자 등을 통해 확진자 발생 사실을 알게 된다고 비판했다.

고객에 대한 관리도 문제다. 이날 서울지역의 백화점들을 방문해보니 고객들이 입장할 때 체온을 재긴 했지만 QR코드 확인 및 출입명부 작성은 하지 않았다. 일부 백화점은 매장별 직원 1명씩만 근무 중이었는데, 반면 식품 마트 코너의 계산원들은 다닥다닥 붙어 계산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해 일주일 정도 휴점했던  서울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이 13일 영업을 재개했다. 이날 오전 고객들이 QR코드와 체온을 체크한 뒤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해 일주일 정도 휴점했던 서울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이 13일 영업을 재개했다. 이날 오전 고객들이 QR코드와 체온을 체크한 뒤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화점노조는 협력업체를 포함한 백화점 근무 직원들에 대한 선제 검사, 코로나19 대유행이 진정될 때까지 영업시간 단축, 방문자 수 제한을 요구했다. 또 정부와 백화점이 통일된 세부 방역지침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김연우 백화점노조 사무처장은 “백화점은 출입자 발열 체크와 판촉용 시음·시식 금지, 마스크를 벗고 이용하는 본품 제공 금지, 휴게공간 이용 금지 등 대책이 전부”라며 “백화점의 방역수칙은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전혀 보호하지 못하고 백화점을 이용하는 고객들도 위험에 노출되는 등 매우 불안한 대책”이라고 했다. 유종철 서비스연맹 조직국장은 “식당에는 2명만 앉아도 안 된다고 하면서 수천명, 수만명이 오가는 백화점은 괜찮다는 정부 방침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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