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주민·노인들 ‘이중고’…코로나에 폭염에 쉴 곳을 잃은 사람들

반기웅·유선희·강은·김혜리·이두리·한수빈 기자

경로당·무더위 쉼터 무더기 폐쇄

얼음물 등 냉방용품 지원도 끊겨

“더위 피할 곳도 얘기할 이도 없어”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폭염경보가 발령된 14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 담장 아래에서 노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폭염경보가 발령된 14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 담장 아래에서 노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집이 더운데 경로당에는 오지 못하니 힘들지. 정부 방침이라 따르기는 해도 저를 포함해 다 2차까지 백신을 맞았고, 경로당에서도 종일 마스크를 쓰는데 임시 휴관이라니 아쉬워요.”

낮 기온이 30도를 웃돈 14일 서울 강남구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김모 할머니(72)가 이같이 말했다. 이 경로당은 정부의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상향에 맞춰 지난 12일부터 임시 휴업에 들어간 상태다. 구청에서 소독을 나와 청소차 잠시 들렀다는 김 할머니는 “막상 들어오니 너무 시원해서 더 있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 재유행으로 경로당 등 무더위 쉼터가 대거 문을 닫으면서 폭염에 취약한 노인들이 갈 곳을 잃었다.

또래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탓에 이들이 느끼는 정서적 고립감도 커지고 있다. 홀로 사는 박모 할머니(79)는 “경로당에서는 더위도 피하지만 서로 대화도 나누고 개별 모임도 했는데 당분간 할 수 없어 아쉽다”고 했다.

인근에서 만난 전모 할아버지(93)도 “더위도 더위지만, 탁구를 치고 또래들과 이야기도 나누려고 노인정을 찾았는데 지금은 다 폐쇄돼 말을 할 사람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폐쇄되지 않은 야외 공원을 찾아 잠시나마 더위를 식히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서울 송파나루공원 인근에서 만난 최모씨(66)는 “동호수어린이공원은 다 폐쇄라인을 쳐놨는데, 이곳은 다행히 주민들이 운동하러 와서 그런지 막아놓지 않아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더위·방역 무대책 쪽방촌

쪽방촌 주민들도 무더위를 피할 길이 없다.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이모 할아버지(83)는 하루 종일 문을 열어둔다. 문을 닫으면 방 안에 고인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는다.

공용 화장실 옆방에 사는 김영숙 할머니(91)는 방문도 편히 열어두지 못한다. 오가는 길이 비좁아 문을 활짝 열면 주민들의 통행에 방해가 된다.

김 할머니는 “에어컨을 달아볼까 했는데 주인집에서 못 달게 했다. 움직이면 더우니까 그냥 가만히 있는다”고 했다. 그나마 찬 바람을 쐴 만한 곳은 인근 후암동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에 마련된 무더위 쉼터뿐이다.

경로당도 문을 굳게 걸어잠갔고, 노인종합복지관은 회원제로 운영돼 진입 문턱이 높다. 이시기씨(55)는 “갈 곳이 없어 그냥 밖에 나와 있다. 코로나19로 사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은 그늘 밑 의자에 앉아 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렸다. 무더위 때문에 연신 부채질을 해봐도 후텁지근한 열기가 가시지 않는다. 마스크와 콧잔등이 맞닿은 부분은 늘 축축하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이 자주 찾는 쉼터도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문을 닫았다.

이모 할아버지(80)는 “밤에도 더우니까 밖에 나와 물을 끼얹고 버틴다. 전에는 다른 데서 에어컨 바람도 쐬고 했는데 이제는 코로나19 때문에 못 다닌다”고 했다. 외부에서 전해지는 냉방용품 지원도 끊겼다. 김병순씨(60대 후반)는 “올해는 왜 그런지 얼음물도 안 준다. 냉장고도 없는 사람들은 뜨끈한 물을 마시고 산다”고 했다. 박승민 동자동 사랑방 활동가는 “혹서기 취약계층에 대한 문제가 매년 제기됐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나아진 게 없다”며 “쪽방촌은 365일 긴급상황으로 ‘긴급돌봄’과 같은 접근방식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 제공 사이트는 ‘오류’

서울의 무더위 쉼터가 전면 폐쇄된 것은 아니다. 25개 자치구에 설치된 경로당 2868곳 중 중구·동대문구·중랑구·마포구·강동구를 제외한 20개구 2303곳의 운영이 오는 25일까지 잠정 중단됐다.

운영을 지속 중인 5개 자치구는 경로당 이용시간을 폭염시간대인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제한해 문을 열거나 수용 가능 인원의 50%만 받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소한의 공적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주민센터 쉼터는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안전누리 사이트에서 무더위 쉼터 위치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유행 전 취합한 목록이라 잘못된 정보가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작년부터 2년째 쉼터 운영을 하지 않는 시중은행 업장도 여전히 사이트에 등록돼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쉼터 운영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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