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으로 차별할 수 없게…‘행복한 老동자’ 가이드라인 세워야

이혜리·강한들·고희진 기자

④노인을 위한 나라

[내막노:내 마지막 노동일기]‘늙음’으로 차별할 수 없게…‘행복한 老동자’ 가이드라인 세워야

노인 노동 총괄 컨트롤타워 부재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노후 위해
사회참여 보장하는 ‘법률’ 필요

일하는 노인이 많아지는 시대,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일할 수밖에 없도록 노인들을 자꾸 노동시장으로 내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하는 노인의 존재를 외면하면 이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노인들이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보장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면서도, 노인의 노동을 직시하고 이들의 노동이 행복한 노년을 사는 데 도움이 되도록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들은 노인 빈곤이 심각하다는 데 공감을 표시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책 대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 대응과 함께 노인 대책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안정적인 연금 수급’이다. 현재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등 연금을 통한 소득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아 노인들이 생계형 일자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재정 문제와 얽혀 개선 속도가 부진하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은 노후의 다층적인 소득보장체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잘 구성돼 있지 않다”며 “이 체계의 혜택을 골고루 받는 노인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기초연금,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연금에 의존하는데 그 소득 수준도 굉장히 낮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유럽은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30% 이상이지만 한국은 11% 수준”이라며 “국가 예산을 키워서 노인일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리고 소득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국민연금도 한계가 있고 소득대체율을 높여도 나머지 50%는 어떡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쉽지 않다”며 “결국 예산의 문제이고, 기본소득도 고민해볼 시기라고 본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대선 요구안에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50% 상향을 포함시켰다. 한국노총에서 최근 출범한 ‘노인 빈곤 해소와 공적 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전 국민의 공적연금 수급권 보장, 최저생계비 이상의 연금액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정년 연장’은 뜨거운 감자다. 현행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제19조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고령화가 계속되고 연금 수급 시기가 65세이기 때문에 소득 공백을 없애기 위해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정년 연장의 효과가 정규직 바깥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간병인과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나 영세기업에 종사하는 경우, 자영업자는 정년 연장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 쪽에선 반대 기류가 심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9일 5인 이상 기업 1021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10곳 중 6곳이 정년 연장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연공급제로 인한 인건비, 고령 인력의 생산성 저하, 조직 내 인사적체 등을 부담되는 이유로 꼽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년 연장은 연공급제 임금체계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젊은 시기 적은 임금을 받고 근속 연수가 쌓일수록 많은 임금을 받는 구조가 정년 연장에 방해가 되므로 직무의 난이도, 가치 등을 기준으로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급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제10회 수원시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에서 노인 구직자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제10회 수원시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에서 노인 구직자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 시간·환경 등 맞춤형 설계로
노인친화적 노동유연성 확보해야

정부, 노인 빈곤 구제로 접근 말고
‘노동 생애 설계’ 서비스 제공을

노인의 노동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대안을 마련하는 논의는 최근 잇따라 이뤄지고 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필두로 한 연구진은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으로 수행한 ‘일할 수밖에 없는 노인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노인일자리를 규정하는 별도의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인에 관한 법률로 노인복지법,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고령자고용법 등이 있지만 노인일자리와 관련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노인이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노후를 영위할 수 있도록 일자리 등 사회참여를 지원하는 취지의 별도의 노인일자리 관련 법률을 만들어 노인일자리 기본계획 수립과 노인일자리 위원회 설치 등을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노인 노동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연구진은 냈다. 법정 은퇴나이를 넘은 노인이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고용조건, 노동환경, 최소·최대 노동시간, 임금, 건강권 등에 대한 내용을 규정해 노인 노동자를 활용하는 공공기관부터 적용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또 젊은 노동자들과 달리 노인 노동자는 단시간 노동을 선호하고 지나치게 생산성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등 노인친화적인 노동유연성이 무엇인지 연구·설계하고, 노인의 고용 안정을 위해 주된 일자리 경력을 바탕으로 계속 일할 수 있는 고용환경도 조성돼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차원에서 노인의 노동을 ‘권리’ 측면에서 다루려는 시도들도 나타난다. 노인에게 생활을 위한 적절한 소득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노인의 권리이자 국가의 책무라는 지점에서다. 헌법 제34조는 ‘국가는 노인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노령을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한다. 특히 여러 법령에서 나이를 이유로 고용상의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 속에서 연령 차별 문제가 심각한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한 규범을 만들고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노인 노동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문제도 있다. 복지 영역인지, 노동 영역인지도 불명확하고 여러 부처에 업무가 분산돼 있다. 한 노인일자리 담당자는 “노인일자리 관련 정보가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 등으로 분산돼 있는데 통합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한 군데로 정보를 모으기만 해도 일자리를 찾는 노인에게 안내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노인일자리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일자리 개발은 물론, 노인 우선 고용과 노인생산품의 판매 이용을 촉진하는 식의 지원책도 제시된다. 이영민 숙명여대 인적자원개발대학원 교수는 “노인을 고용해 현장에서 숙련도 높은 노동자가 노인을 지도하거나 업무를 숙달시키는 일·학습 병행(OJT) 방식을 활용하면 어떨까 싶다”며 “노인에게 적합한 업종과 훈련 수요를 발굴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고령사회대응연구회를 만들어 지난 9월부터 고령사회에 대한 정부 정책 대응과 정년 연장, 인프라 구축 등을 논의하고 있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인 문제는 고용정책을 통해서 일자리만 준다고 해결되지 않고 복지정책도 함께 가야 한다”며 “정년 연장이 만병통치약이 아니기 때문에 정년 연장을 왜 하려고 하는지, 실질적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노동 생애 설계’가 필요하다. 청년 시기의 노동, 노인 시기의 노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전 생애적 관점에서의 노동 설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젊은 시기에 너무 일만 열심히 하고 자기계발 등을 하지 못한 결과 노인 시기에 열악한 노동으로 빠지기도 한다. 최혜지 교수는 “노동은 사람이 일생에 거쳐 굉장히 장기간 동안 하는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한 사람의 경력을 관리해주면서 필요할 때 직무 훈련을 지원하는 식의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젊어서의 노동은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것이었다면, 죽기 전 생애 마지막 노동이 될 수도 있는 노인의 노동은 생산성에서 벗어나 자신이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이었으면 한다”며 “그렇게 노인의 노동이 새롭게 정의돼야 노인들이 더 건강해질 수 있고 역동적인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들쑥날쑥한 노인의 기준
붕 뜬 ‘퇴사와 연금 사이’


[내막노:내 마지막 노동일기]‘늙음’으로 차별할 수 없게…‘행복한 老동자’ 가이드라인 세워야

‘노인’이라 불리는 나이는 언제부터일까. 고령자의 기준은 55세(이하 만 나이)부터이고, 노동자의 정년은 60세다.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는 65세인데,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70세부터 노인이라 부르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노인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는 일할 수 있는, 혹은 사회보장제도를 수급할 수 있는 ‘자격’과 연동되는 중요한 문제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달 23일 발간한 이슈와 논점 1894호 ‘노인 연령 기준의 현황과 쟁점’을 보면, 노인 연령 기준 설정은 대개 고용의 관점과 사회보장의 관점을 적용할 때로 나뉜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19조에서는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고령자는 동법 시행령 제2조에서 55세 이상으로 정의됐다. 이에 따라 노인취업지원센터 등에서는 55세부터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은퇴 이후 임금 외 소득보장의 기본형태인 국민연금은 수급 개시연령이 62세이나 2033년까지 5년마다 1세씩 상향돼 65세로 높아진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의 수급 연령도 65세다. 철도 운임 할인,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등 각종 사회보장혜택 상당수도 역시 65세부터다.

고용과 사회보장의 기준에서 정의하는 노인 연령이 길게는 10년 정도 차이가 난다. 이 차이가 소득 절벽으로 나타나기 쉽다. 경향신문이 인터뷰한 노인 노동자 상당수가 이 점을 지적했다. ‘실제 55세, 60세에 회사에서 떠나라고 압박받지만, 연금은 65세부터 받으니 그간은 뭘 먹고 살라는 것이냐’는 항변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대개 70세 정도까지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에 출생한 아이의 기대수명은 83.3년이다. 약 50년 전인 1970년 62.3년에 비해 20년 넘게 늘었다. 기대수명이 늘면서 ‘노년’의 시작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바뀌어간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현재 65세 이상 노인이 생각하는 노년의 시작 연령은 평균 70.5세였다.

결국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지만, 목적은 다른 경우가 많다. 철도 운임 할인 등 노인에 대한 각종 혜택을 폐지하거나 대상 연령을 70세로 올려야 하다는 측은 고령인구의 증가로 인한 각종 사회보장기금 등의 재정 적자를 우려한다. 반면 고용 기준의 연령 향상은 노인 일자리의 보장을 의미한다. 이들은 사회보장제도에서 정의한 노인 기준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근로능력이 없는 빈곤 노인들의 기초적인 생활 보장을 위해서다. 입법조사처는 이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 무임승차제 등을 포함한 사회보장제도의 연령 기준을 상향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시리즈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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