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시공사는 빠져나가는 ‘꼬리자르기’식 처벌이 ‘제2의 학동 참사’ 불렀다

이혜리·유선희 기자
광주 서구 화정현대아이파크 아파트가 봉괴된지 이틀째인 12일 내부 및 외부 구조물이 붕괴돼있다. 11일 이 아파트 1개동 28~34층이 붕괴되며 작업자 6명이 실종됐다. 한수빈 기자

광주 서구 화정현대아이파크 아파트가 봉괴된지 이틀째인 12일 내부 및 외부 구조물이 붕괴돼있다. 11일 이 아파트 1개동 28~34층이 붕괴되며 작업자 6명이 실종됐다. 한수빈 기자

광주 아파트 외벽붕괴 사고 건설현장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지난해 시민 9명이 사망한 광주 학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의 시공을 맡았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대기업 시공사가 재해 책임을 면하는 제도가 이번 사고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사고 피해 노동자들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다. 오는 27일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은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여전히 공사기간 단축·비용 절감이 안전보다 강조되는 현장 분위기가 잇따른 사고를 만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2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현대산업개발이 원청으로 있는 사업장에서 2016~2020년 5년간 16명의 노동자가 숨지거나 다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경기 파주시의 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에서만 1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했다. 낙하물 방지망 해체작업 중 18m 높이에서 추락해 숨진 사례, 방수작업 중 단열재 더미가 무너지면서 숨진 사례 등이다. 2017년엔 경남 거제시 아이파크 신축공사에서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했다. 현대산업개발은 고용노동부가 매년 발표하는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도 수 차례 이름을 올렸다.

특히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작업 중 건물이 붕괴한 사고의 시공사이기도 하다. 사고 조사 과정에서 현대산업개발이 다른 업체에 도급을 주고, 이 업체는 또 다른 업체에 재하도급을 주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드러났다. 이 사고로 현대산업개발 쪽 현장소장과 안전부장 등이 재판에 넘겨지는 데 그쳤고, 경영책임자 등은 기소되지 않았다. 구속된 사람은 대부분 하청업체 관계자였다. 대기업인 시공사가 지시와 관리·감독을 하는데도 현장 작업자와 하청업체를 중심으로 책임이 지워진 것이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법 제정으로 처벌 수위는 높아졌지만, 이윤을 내는 공식은 바뀌지 않았다”며 “법을 지키려면 이익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새로운 작업방식을 도입해야 하는데 현장은 여전히 예전 법의 작업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고가 날 수밖에 없고, 법이 강화돼도 현장에서 똑같이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전 교수는 “사고가 났을 때 하청업체에 처벌이 집중된 것은 산안법 자체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안전보건 규정을 지켰는지를 따지기 때문”이라며 “건설현장과 같이 도급·하청이 많은 업종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규정을 지키는 주체가 원청이 아니라 하청이었고, 원청은 추가적으로 책임지는 구조였던 것”이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원청이 제3자에게 도급·용역·위탁 등을 한 경우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이 때에도 원청이 하청의 시설·장비·장소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이 적용돼 실제 원청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는 27일 법 시행 이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기업들 쪽에선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와 사고와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돼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중대재해법 시행령은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이행 조치로 9개 사항을 규정하는데, 이중 일부만 지키지 않았을 경우 원청 기업 쪽에선 사고와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발주처에 대한 책임 규정은 중대재해법에선 빠져있다. 원정훈 충북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는 콘크리트 양생(타설 후 콘크리트가 충분히 굳도록 보호하는 작업)은 품질의 문제이지만, 이제는 품질과 노동자 안전의 문제를 따로 떼놓을 수 없다”며 “품질 관리 계획은 원청 시공사가 수립하게 돼있고, 시방서에 양생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재하게 돼있기 때문에 시공사가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노동계에서는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부실 시공, 관리감독 부실이 빚은 예견된 참사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지지 않고 솜방망이 처벌에 머물면서 건설현장 산재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다”며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건설공사는 사업주와 노동자라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발주, 설계, 시공, 감리 등으로 각 과정마다 주체가 분리돼있어 이같은 특성을 반영한 안전 관련 법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그동안 여러 주체들이 건설현장 사고의 책임을 서로 떠넘겨왔는데, 종합적인 안전 관리와 책임의 주체를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다”며 “건설안전특별법을 통해 발주자를 포함해 건설공사의 전 과정에서 안전을 고려한 책임을 명확히 해야 공사기간이나 비용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도 “시공사는 물론이고, 발주처도 책임을 명확히 물어야 한다”며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건설업 구조에서 중대재해법이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에서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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