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까지 떠넘긴 불법 재하청, 아버지 죽음 방치”

김송이 기자

② 리프트 사고 유족

건설 현장에서 리프트에 깔려 숨진 마채진씨의 두 딸 혜진씨(왼쪽)와 혜운씨가 한국건설 본사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마혜운씨 제공

건설 현장에서 리프트에 깔려 숨진 마채진씨의 두 딸 혜진씨(왼쪽)와 혜운씨가 한국건설 본사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마혜운씨 제공

건설현장서 홀로 작업 도중
떨어진 리프트에 깔려 숨져

세 모녀 5일간 시위 벌이자
원청 한국건설 뒤늦게 사과
하청·재하청 업체 ‘묵묵부답’

“업체들, 책임 회피에만 급급
예방 위한 태도 변화 필요”

생전 좋아하시던 소주 한 잔을 올리며 아버지를 제대로 배웅하기까지 꼬박 37일이 걸렸다. 지난달 19일 오전 10시 광주 남구 한국아델리움더펜트 건설현장에서 마채진씨의 추모제가 열렸다. 아버지를 앗아간 화물용 승강기 앞에 차려진 제사상을 향해 마씨의 둘째 딸 혜진씨(28)가 네 번 절을 올렸다. 안전모를 쓴 건설노동자들과 검은 정장을 입은 시공사 한국건설 임원도 허리를 숙여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그 모습을 보던 첫째 혜운씨(32)는 양손으로 만삭의 배를 받친 채 눈물을 삼켰다.

마씨는 지난 6월11일 건설현장 내 화물용 리프트 자동화 설비를 홀로 설치하다 떨어진 리프트에 깔려 숨졌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씨는 리프트에 2시간 동안 깔려 있다 발견됐다.

마씨의 주검이 발견된 뒤에도 현장에 리프트 전문가가 없어 시신을 수습하는 데 2시간이 더 걸렸다. 외과 의사인 혜운씨조차 주변에서 처참하다며 말리는 탓에 차마 시신을 볼 수 없었다.

마씨의 죽음은 여러 의문점을 남겼다. 두 딸은 아버지가 왜 휴일인 일요일에 출근했는지, 왜 2인1조가 아니라 홀로 작업을 했는지, 리프트는 왜 추락했는지, 안전관리자는 왜 사고 당시 현장에 없었는지 알 수 없었다. “관리자가 현장에 있었어도 아버지가 2시간 동안 리프트에 깔려 있었을까요.” 꼬리를 무는 의문점을 해결해 주는 이는 없었다. 건설현장을 책임져야 할 원청도, 아버지와 10년간 일을 해 온 하청업체도 모두 책임을 회피하느라 바빴다.

장례비용을 지원해주겠다던 원청 한국건설이 돌연 연락을 끊은 뒤에야 두 사람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아버지의 사고가 뉴스에서 보던 산업재해이고, 원청이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원청은 사고 경위를 설명하거나 사과하는 대신 현장에서 추모제를 치렀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유족에게는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 존재조차 몰랐던 추모제였다.

산업재해라는 말도 생소하던 자매는 도서관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관련 도서 10여권과 법규를 뜯어보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체 아빠가 왜 거기서 혼자 그러고 있었는지,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 알고 싶었어요.” 혜운씨는 이번 일을 겪은 뒤에야 아버지가 지난 10년간 다닌 2차 하청업체 건설현장들이 위험한 곳이었음을 알게 됐다. “불법 재하청을 왜 불법이라고 하는지 알게 됐어요. 현장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원청이 근로자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으면 하청은 본인 사업장도 아닌 곳에서 안전관리를 계속 소홀히 하게 되겠죠.”

자매는 처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한국건설은 묵묵부답이었다. 원청은 하청업체의 책임까지 홀로 질 수 없다는 식으로 핑계를 댔다. “원청의 안전관리자가 부재해서 아버지가 방치됐는데도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에 가장 많이 화가 났죠. 사람이 죽었는데 왜들 그렇게 사과 한 번을 어려워할까요.” 혜진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 만인 지난 7월10일. 세 모녀는 폭염 속에 상복을 입고 한국건설 본사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문제라는 건 알았지만 유가족이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더라고요. 회사가 계속 묵묵부답으로 나오니까 1인 시위 말고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았어요.” 8월 초 출산 예정으로 만삭이던 혜운씨가 아버지의 영정을, 혜진씨가 ‘누가 우리 아버지를 죽였는가’라고 쓰인 팻말을 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5일간의 시위 끝에 원청이 사과했다. 한국건설 홈페이지와 무등일보에 사과문이 게시됐다. “미흡한 대처와 소통의 부재로 재차 큰 무력감을 입게 한 부분에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 비로소 유가족이 함께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진실을 알고자 싸우는 동안 가족끼리 슬픔을 추스를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에 서서 ‘같이 저녁 먹을래, 뭐 해줄까’ 물어보던 아버지를, ‘아빠’ 대신 ‘채진’이라고 친구처럼 부르던 아버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왜 이렇게 아프게 갔는지 아빠가 원망스러울 정도였어요. 온전히 슬퍼하고 그리워만 하기에도 부족했을 텐데요.” 두 사람은 원청과 하청이 장례식장에서 사과만 했더라면 시위를 하고 법을 따져보는 대신 서로 위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떠나보냈지만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청업체와 재하청업체는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는 노동청 조사는 더디기만 하다. 지난 4일 2차 현장감식이 진행됐지만 노동청이 누구를 조사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위반 사항을 조사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혜진씨는 “법령을 보면 리프트 자동화 설비를 설치하기 전에 점검이 있어야 했는데 노동청이 이런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하청 주체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연일 쏟아지는 비로 인해 현장이 훼손되지는 않을지도 걱정이다.

마씨 사고 이후에도 전국 각지의 노동 현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추모제 직전에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도 일어났다. 두 사람은 어떤 사고든 책임자가 확실하게 처벌받고 사고의 의문이 해소돼야만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외로운 싸움 속 다른 유가족들과의 연대는 큰 힘이 됐다. 추모제에도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가 왕복 5시간 거리를 한걸음에 달려왔다. “혹시나 회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저희가 외로울까 봐 먼 거리를 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다른 가족들이 이런 일을 겪고 싸울 때 나도 옆에 서줘야겠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이씨와 인사한 혜운씨가 말했다.

혜운씨와 혜진씨는 아버지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죽고 나서 부랴부랴 원인을 찾으려고들 하잖아요. 책임 회피에 급급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목숨을 지키는 걸 우선하는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더 큰 사고가 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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