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달라’에서 ‘살려달라’로 바뀐 자영업자들의 SOS

조해람·민서영·이홍근 기자

전국서 ‘안타까운 죽음’ 잇따라

한계 상황에서 마지막 생존 요청

썰렁 추석 명절을 앞둔 15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 신발도매 상가가 예년과 달리 코로나19 사태로 한산하다. 연합뉴스

썰렁 추석 명절을 앞둔 15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 신발도매 상가가 예년과 달리 코로나19 사태로 한산하다. 연합뉴스

15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고깃집, 텅 빈 테이블 사이로 사장 A씨의 대걸레가 지나갔다. 그는 하루에 300만원씩 기록하던 매출이 50만원으로 쪼그라들어 직원을 줄였다. 무급으로 고용하고 있는 것보다 실업급여라도 받도록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 매출이 4500만원은 되어야 수중에 남는 돈이 생기는데,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 7월에는 1678만원이 들어왔다. A씨가 보여준 결제단말기(POS) 화면에서 가장 낮은 매출은 7월 말의 어느 날 찍힌 12만7000원이었다. A씨는 “우리가 1차 장사라면 술집은 2차 장사인데, 홍대 쪽 술집들은 다 문 닫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곳은 지난 7일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B씨의 술집에서 도보로 11분 거리에 있다. 동네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B씨의 술집은 주변 직장인과 주민들의 만남 장소였고, 방송에도 출연할 정도였다. 굳게 닫힌 B씨 가게 문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들 사이로 누군가 붙인 일곱 글자가 노란 쪽지 위에 선명했다. “곧 따라갈 거예요….”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이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전남 여수에서 치킨집 사장이 경영난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다음날인 13일에는 강원 원주의 한 건물 화장실에서 유흥업소 사장이 싸늘한 주검이 됐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자영업비대위)에 따르면 지난 1월 대구 닭꼬치집 사장이, 7월 경기 안양시에서 술집 사장이, 8월 경기 성남시에서 주꾸미 식당 사장이 세상을 떠났다. 여행업을 하던 한 사장은 손실을 메꾸려 다른 일을 병행하다 두통을 호소하며 방문한 병원 주차장에서 숨졌다.

■“상인들 다 죽는 소리…” 하루 1000곳씩 폐업

자영업비대위, 오늘부터 3일간 추모분향소 열 예정
“알려지지 않은 죽음 훨씬 많을 것…비극 멈춰 달라”

자영업자비대위는 “제보를 통해서만 이미 수십분의 소상공인들이 떠나갔음이 확인됐다”면서 “자영업자들의 외침이 ‘도와달라’는 요구가 아닌 ‘살려달라’는 생존 요청으로 바뀌었음을 정부와 방역당국은 인지해야 할 것이며, 현재 드러난 빙산의 일각을 무시하고 지속적인 규제를 강행할 시 이후 감당해야 할 사회적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영업비대위는 16일부터 3일간 서울 모처에 세상을 떠난 자영업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 분향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서울 노원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김한철씨도 연이은 비극에 우울하다. “다 죽는 소리 해요. 주변 상인 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한 시간이면 벌던 10만원이 요즘은 하루 매출이다. 한 달에 400만~500만원씩 적자라 문을 열면 더 손해라는 그는 하루에 3~4팀은 받아야 숨이라도 쉴 수 있다고 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년6개월간 자영업자들이 66조원이 넘는 빚을 떠안았고 45만3000개 매장이 폐업했다고 밝혔다. 하루 평균 1000곳씩 폐업한 셈이다.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지난 14일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극한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오늘 이 자리에서 정부에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고 “자영업단체들과 언론은 알려지지 않거나 보도되지 않은 죽음이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경제인구의 4분의 1인 중소상인·자영업자 가구가 무너지면 경제의 회복도 요원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영업자들이 임대료를 3개월 이상 연체해도 코로나19 기간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하고, 권리금 회수 기회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내용의 입법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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