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엄빠·냥집사·식집사…우리, ‘반려’가 되기까지

노도현·김지환 기자
이주환씨가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 입양상담실에서 유기견 치퐁이에게 간식을 주고 있다. 반려문화가 확산되면서 개뿐 아니라 고양이, 식물 등을 반려 대상으로 삼는 이들도 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주환씨가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 입양상담실에서 유기견 치퐁이에게 간식을 주고 있다. 반려문화가 확산되면서 개뿐 아니라 고양이, 식물 등을 반려 대상으로 삼는 이들도 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대학원생 이주환씨(28)와 회사원 이연우씨(26) 남매는 어린 시절 만화 <짱구는 못말려>에서 주인공 짱구가 반려견 흰둥이와 노는 모습이 부러웠다. 만화 속 짱구와 짱아처럼 사이좋은 남매였지만 그들에겐 흰둥이가 없었다. 강아지를 갖고 싶다고 졸랐지만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았다. 남매는 주말 아침마다 <TV 동물농장>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최근 남매만의 흰둥이를 찾을 기회가 왔다. 두 사람이 부모님 집에서 나와 살게 되면서다. 둘은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마포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이곳은 유기동물 입양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숏다리 ‘치퐁이’의 사진에 눈길이 갔다. 두 살로 추정되는 치퐁이는 경기 여주시의 개농장에서 살아남은 믹스견이다.

“오늘은 품에 오래 있네. 간식값 많이 벌어야겠다.”

남매는 지난달 11일 센터에서 치퐁이와 처음 인사를 나눴고, 6일 뒤인 17일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남매는 치퐁이에게 간식을 주며 친해졌다. 치퐁이는 처음보단 연우씨 손길이 반가운 기색이었다. 낯가림이 풀렸을 즈음 산책 단계로 넘어갔다. 주환씨가 치퐁이와 길을 나섰다. 연우씨는 산책 파트너인 닥스훈트를 데리고 짝을 이뤘다. 처음에는 목줄도 엉키고 걸음도 엉거주춤하더니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남매는 이날 25분 동안 이어진 산책과 추가 상담을 거쳐 입양을 확정했다. 크리스마스인 지난달 25일 치퐁이는 드디어 남매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왔다. ‘바비’라는 새 이름으로 견생 2막을 열었다.

어릴 때부터 키우고 싶던 강아지
독립 후 유기견 입양하기로 결심
개농장서 살아남은 ‘치퐁이’ 눈길
두 차례 만난 후 입양 확정 내려
새 이름 ‘바비’로 견생 2막 활짝

2007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반려동물’이 공식 용어로 등장한 지 16년이 지났다. 그사이 집 안에서 인간과 더불어 사는 동물들에게 붙는 수식어 ‘애완’은 ‘반려’가 대체했다. 개, 고양이 등을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는 대상에서 삶을 공유하는 동반자로 바라보는 인식이 커졌다. ‘2020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를 보면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가구 수는 전체의 15%인 312만9000가구다. 여섯 집 건너 한 집꼴로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 11.6%가 개를, 3.4%가 고양이를 키운다. 세대 구성별로는 3세대 이상이 모여 사는 가구의 20.1%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반면 1인 가구는 9.8%에 그쳤다. 반려문화 확산이 단순히 1인 가구가 증가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이주환(오른쪽)·연우씨 남매가 지난달 17일 서울 마포구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 인근에서 입양을 준비 중인 유기견들과 산책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주환(오른쪽)·연우씨 남매가 지난달 17일 서울 마포구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 인근에서 입양을 준비 중인 유기견들과 산책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사람들은 왜 돈과 시간은 물론 책임까지 필요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생활에 뛰어들까.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펴낸 ‘2021 한국 반려동물보고서’를 보면 반려동물을 입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동물을 좋아해서’(32.7%)다. 연우씨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좋아했다. 여느 반려가족들처럼 재미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유기견 문제에 관심이 있던 주환씨는 “예전부터 여건이 되면 유기견을 데려와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가족·자녀가 원하거나 또 하나의 친구·가족을 갖고 싶어 반려동물을 입양했다고 답한 비율도 각각 18.7%, 15.0%에 달했다. 1인 가구에선 외로움을 달래려 한다는 응답(13.7%)이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의 입양 동기는 주로 자녀에게 있다.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입양 상담을 맡고 있는 박선유 실무관은 “입양 상담을 하러 오는 이들의 80%가량이 자녀가 원해서”라며 “아이를 만류해달라고 부탁하는 부모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명호씨(오른쪽)와 아내 허은주씨가 지난해 11월23일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반려견 하빈이와 함께 미소짓고 있다. 노도현 기자

이명호씨(오른쪽)와 아내 허은주씨가 지난해 11월23일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반려견 하빈이와 함께 미소짓고 있다. 노도현 기자

그렇게 반려가 된다

“오늘부터 담배 끊는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명호씨(56)는 5년 전 수십년 지기 담배와 결별했다. 금연을 성공으로 이끈 일등공신은 반려견 ‘하빈’이다. 이씨는 “가족들에게 담배 사는 돈으로 하빈이 밥과 간식을 책임지겠다는 공약을 했다. 하빈이한테 맛있는 걸 해주고 싶은 참에 명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원래 가족 중 유일한 ‘입양 반대파’였다. 2018년 초 유기견센터 봉사활동을 하던 아들이 처음 입양을 제안했을 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갓 태어난 새끼 6마리가 가족을 찾지 못하면 안락사를 당한다는 말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달라질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어느 날 아내가 어미개에게 줄 북엇국을 끓였다며 센터에 데려다달라고 했다. 가보니 덩치가 크고 활달한 새끼 한 마리가 눈에 밟혔다. 일주일 넘게 고심한 끝에 이씨도 찬성으로 돌아섰다.

하빈이가 온 뒤로 집안에 생기가 돌았다. 가족 채팅방도 시끌시끌해졌다. 이씨는 오전 8시면 하빈이와 함께 눈을 뜨고 출근길에도 동행한다. 개 키우기를 반대하던 중년 남성이 열혈 ‘개아빠’로 거듭났다. “하빈이는 우리집 복덩이예요. 365일 위로받아요. 눈만 마주쳐도 즐겁죠.”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반려 존재’를 자신의 삶의 공간에 들인다. 그런데 갖가지 사연들이 수렴되는 한 단어가 있다. 반려 존재가 주는 ‘위로’다. 위로를 얻으며 정을 쌓고, 나아가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변화들이 유사하게 나타난다. 위로는 반려생활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반려시대, 누구랑 사세요?①] 개엄빠·냥집사·식집사…우리, ‘반려’가 되기까지

발달장애 아들, 고양이 입양 후
주변에 대한 관심·표현력 높아져
“아라, 산이 안을 때 가장 좋아요”

경기 이천에 사는 전유경씨(45)는 8년 전 고양이 부부 ‘산이’와 ‘아라’의 엄마가 됐다. 입양을 결정한 건 두 남매 때문이다. 특히 발달장애를 가진 첫째 류현비군(15)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전씨도 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마음속으로 그려오던 터였다.

“어느 땐 아무리 잔소리해도 말 안 듣는 자식보다 고양이들이 나아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주거든요.” 전씨는 “가족들과 한집에 살아도, 많은 사람 속에 섞여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라며 “밥 주고 똥 치우는 일이 힘들 순 있지만 때론 동물이 사람보다 더 좋은 대화 상대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들 현비군은 수년째 고양이와 교감하면서 주변을 향한 관심이나 표현력이 늘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 역시 고양이들에게 위로를 받는 듯했다. 현비군이 나지막이 말했다. “아라, 산이 안을 때가 가장 좋아요. 우리 가족이에요.”

반려는 사고처럼 뜻하지 않게 다가오기도 한다. 전남 순천의 냥집사(고양이 집사) 김종철씨(66)와 반려묘 ‘아토’의 인연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가 큰 수술을 받고 집에서 투병생활을 이어갈 때였다.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던 큰딸이 종이상자에 담겨 학교 인근에 버려진 새하얀 아기 고양이를 데려왔다. 김씨는 “세상과 인연을 놓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하는 아빠에게 딸이 건네는 작은 선물인 것만 같았다”고 회상했다.

함께한 세월이 벌써 13년이다. 새벽녘 동이 틀 때마다 아토는 김씨를 흔들어 깨운다. 김씨는 “옆에서 아토의 몸을 두들겨주면 ‘골골’ 소리를 낸다. 살아 있다는 그 소리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5년 전 아토는 만성당뇨와 췌장암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다 돌아왔다(‘무지개다리를 건너다’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동물병원 의사들은 지금까지 아토가 버틴 게 기적이라 한다. 김씨는 같이 늙어가는 아토, 서울 사는 두 딸의 반려묘 치즈와 동네 길고양이들을 보면서 느낀 단상을 공책에 끄적이곤 한다. 독립출판을 통해 에세이집까지 냈다. 아토에게 쓴 짤막한 편지도 실었다. “너를 상자에 넣어 버린 그분께 감사하다. 널 만날 수 있었으니…. 아토! 더 이상 아프지 마. 우리랑 오래오래 살아.”

[반려시대, 누구랑 사세요?①] 개엄빠·냥집사·식집사…우리, ‘반려’가 되기까지

고마워, 위로해줘서

개엄빠, 냥집사에 이어 반려식물을 키우면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인 ‘식집사’도 늘고 있다. 식물을 키우는 것 자체는 새롭지 않다.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식물을 반려로 여길 만큼 마음을 주고 의지하는 심리다.

10년차 사회복지사 최우림씨(32)는 집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공간을 30여개 화분들에 내줬다. 2021년 10월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1인 가구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만 해도 식물은 집을 꾸미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보기 좋고 예쁜 식물에 지갑을 열었다. 이제는 식물을 들이기 전 우리집에서 잘 살 수 있는 종인지, 내 생활 패턴과 합이 잘 맞는지부터 고민한다. 식물을 반려로 바라보면서 생긴 변화다.

일터에서 돌아오면 말 한마디 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을 때가 많다. 말없는 식물을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는다. 최씨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새잎이 나 있고, 줄기를 뻗어낸다. 어떻게 보면 사람보다 더 용기 있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며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에서 내가 더 배운다”고 말했다.

식물을 반려로 바라보기 시작하자
내 생활 패턴과 잘 맞는지도 고민
복지관 어르신께 화분 선물하기도
“반려 존재가 주는 위로의 가치 커”

장기 여행을 떠난 동료의 식물들도 임시 보호 중이다. 최근 피토니아 화이트스타 화분 하나와는 작별을 했다. 붉은빛 피토니아만으로는 허전하다는 복지관 어르신에게 선물로 건넸다. 최씨는 직업이 사회복지사이다 보니 가장 낮은 곳에서 반려 존재의 소중함을 느낀다. 죽지 않고 사는 이유가 강아지 때문이라는 홀몸 어르신들을 만난다. 이들에겐 반려동물이 사람보다 나은 존재다. 복지 현장에선 당사자와 반려 존재들의 유대관계를 적극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씨는 이런 움직임이 반갑다.

최씨는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면서 교감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졌다”며 “사람들에겐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에 반려 존재를 찾는 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려 존재가 주는 위로는 결코 작지 않은 가치”라고 했다.

[반려시대, 누구랑 사세요?①] 개엄빠·냥집사·식집사…우리, ‘반려’가 되기까지
특별취재팀
구경민·김지환·노도현·성동훈·이준헌·장용석·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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