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 없는 ‘살인예고’…누군가엔 ‘실행 방아쇠’

김송이·강은 기자

흉기난동 반복, 불안감 증폭

모방범죄 심리 커졌다는 ‘신호’
신림역 사건 이후 방지 대책 미흡
범행예고 글에도 처벌 강화 필요
‘정신질환 몰아가기’는 경계해야

<b>혹시라도…오리역 지키는 경찰특공대</b> 경기 성남시 분당 서현역에서 전날 발생한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이후 살인을 예고하는 글이 온라인상에 잇따라 올라와 경찰특공대가 4일 살인예고 장소 중 한 곳인 오리역에서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혹시라도…오리역 지키는 경찰특공대 경기 성남시 분당 서현역에서 전날 발생한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이후 살인을 예고하는 글이 온라인상에 잇따라 올라와 경찰특공대가 4일 살인예고 장소 중 한 곳인 오리역에서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사람 많은 곳에 있으니까 괜히 등골이 서늘하고, 다들 손에 무엇이라도 들고 있는지 유의 깊게 보게 돼요.”

4일 서울 구로구의 한 쇼핑몰에서 만난 직장인 김수민씨(30)는 전날 발생한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을 떠올리면 오싹 움츠러든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서 흉기난동 사건이 벌어진 지 13일 만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또다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이후 이날까지 전국 번화가 곳곳에서 사람을 해치겠다는 예고 글까지 온라인에서 이어지면서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증폭됐다.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은 경찰이 ‘살인예고 게시글 전담대응팀’을 꾸려 엄중 처벌하겠다고 발표한 지 불과 한나절 만에 발생했다. 사건 직후부터 현장에서 6㎞ 떨어진 오리역부터 서울 잠실역, 부산 서면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범행을 하겠다는 글이 우후죽순 올라오면서 불안이 가중됐다. 이날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일명 ‘흉기난동 살인예고 목록’이 만들어져 공유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신림역 사건 이후 이어진 ‘묻지마 범행’ 예고와 서현역 사건을 두고 “그만큼 모방범죄 심리가 커졌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명예교수는 “단순 모방범죄일 가능성도 있고,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살인예고 또는 범행이) 방아쇠 효과 혹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범죄가 일어났을 수 있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대한민국에 산다면 뉴스 보도나 SNS 속 정보를 보면서 신림역 사건을 많이 접했을 것”이라면서 “사회적 불만이나 일상의 어려움이 있는 이들이 일련의 사건을 보며 ‘마음속 불만을 저런 식으로 폭발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했다.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또 다른 범행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살인예고 게시글’이 자칫 범죄를 희화화하며 잠재적 충동을 자극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0여년간 무동기 범죄를 연구해온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범죄분석·조사연구실장은 “예고성 글을 올리고도 ‘실행하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주목받으려는 심리가 우려스럽다”며 “커뮤니티 운영자나 방송통신위원회 등은 무겁게 처벌될 수 있다는 의식을 강하게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서현역 사건 전까지) 살인예고 글 10건이 올라왔는데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자기들 스스로도 실제 범행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을 수 있다”면서 “많은 사람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혼란을 일으키는 테러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신림역 사건 직후 강력한 처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냈어야 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윤 실장은 “신림역 사건 직후 (‘묻지마 범죄’에 대해) 어떻게 처벌할지, 피해자 지원은 어떻게 할지에 대한 정부의 메시지가 강하지 않았다”면서 “대책을 마련하기에 2주라는 시간이 짧을 수 있지만 기존 정책을 참고해 이러한 유형의 범죄자들을 강력 처벌하겠다는 방침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흉악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정신질환 병력으로 몰아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질환과 무관하게 이런 범행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면 치료가 필요한 이들마저 숨게 된다. 방치되지 않도록 편견을 줄여 회복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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