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의 전사들이여, 평화로 싸우라!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올해는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가 태어난 지 15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2월 인도 정부는 내가 봉직하는 대학에 간디 흉상을 기부했다. 그의 탄신일을 즈음하여 10월 초 여러 기관들이 연합해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30년 넘게 간디를 연구해온 사회학자 레스터 컬츠(Lester Kurtz) 교수가 기조강연을 맡았다. 그는 역사적으로 인류가 보여준 두 가지 갈등 해결 방식을 소개했다. 첫 번째 방식은 전쟁 혹은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고, 두 번째 방식은 평화를 추구하는 대화의 방식이다. 전자는 효율적이었지만, 폭력과 희생이 뒤따랐고, 후자는 비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간디는 이 두 가지의 공존 가능성을 인류에게 보여준 위대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갈등 해결 방식을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평화로 싸우라(Fight with Peace)!”

[사유와 성찰]태극의 전사들이여, 평화로 싸우라!

어찌 평화로 싸운단 말인가? 역설적 언어유희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천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리라. 하지만 간디는 영영 비효율적일 것 같은 평화적 해결 방식의 효율성을 삶으로 증명해 보였다. 컬츠 교수는 흥미로운 질문으로 청중의 이해를 도왔다. 특정 주제로 항거할 일이 생겨 광장으로 사람을 모아야겠다고 할 때, 각목이나 연장을 가지고 모이라고 하는 제안과 평화롭게 촛불을 들고나오라는 제안 중 어느 편이 더 많은 사람을 모을까? 평화와 비폭력의 방식을 사용하는 일은 결코 비효율적인 헛일이 아니라, 작은 힘을 모아 불가능을 기적과 같이 가능케 하는 동력을 만들어낸다. 우리 국민은 이미 그런 평화의 엄청난 힘을 경험한 바 있다.

컬츠 교수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을 그림으로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 그림은 우리에게 익숙한 태극모양이었다. 흔히 음과 양으로 상징되는 태극문양에 ‘전사(warrior)’와 ‘평화주의자(pacifist)’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분명 간디는 숨어 있는 지식인이 아니라, 광장으로 나온 전사였다. 하지만 총과 칼을 든 전사와는 전혀 다른 평화주의자로서 싸움에 뛰어들었다. 그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전사’와 ‘평화주의자’가 음양의 조화처럼 아름답게 완성된 삶을 보여주었다. 당시 간디 자신이 태극의 원리를 숙지했을 것 같진 않지만, 내겐 태극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10월 한 달 광화문과 서초동에 모인 인파 대결이 요란했다. 집결인원 불리기 논쟁을 이어가며 서로 동원집회라고 폄하했다. 서로 대한민국의 민심을 대표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보수집회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태극기가 서초동 집회에도 등장했다. 참 반가운 일이다. 국기의 태극문양은 바로 어느 한쪽도 배제되지 않는 조화와 화해의 상징 아닌가. 누가 뭐래도 광장의 시민 모두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태극 전사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롭게 저항하고 비폭력으로 투쟁하는 일이다. 최근 집회에 각목이 등장하면서 광화문 탄핵 촛불시위 때 한 건의 폭력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평화시위 문화에 금이 간 것은 간디가 엄청 비통해할 일이다. 강제력을 동원한 시위나 폭력이 동반된 집회는 간디가 보여준 평화로 싸워 승리하는 결과를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간디의 손자인 아룬 간디(Arun Gandhi)가 심포지엄 둘째날 온라인 축사를 보내왔다. 나는 미국 유학 시절 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로부터 비폭력이라는 개념에 대해 배운 이야기 하나를 소개했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너와 내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깨닫는 것이 비폭력을 시작할 수 있는 첫걸음”이란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단다. 나는 비폭력의 화신처럼 보이는 마하트마 간디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해졌다. 할아버지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쓰는 언어의 폭력성을 주의하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언어폭력이 쌓이면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결국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론분열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서로 생각이 다른 이들을 저주하는 폭언이다. 독설은 상대의 영혼을 죽이는 독살이 되고 만다.

우리 모두 진정 국민통합을 원한다면 평화로 싸울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자극적 언어로 서로에게 상처 주는 폭력을 그만두는 일로 시작된다. 국가원수에게 욕설을 퍼붓고, 수사결과도 나오기 전 한 가족을 가족사기단으로 부른 일은 간디가 보여준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진 평화적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이제 검찰개혁을 위한 국회의 시간이 왔다.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국회에서 평화로 싸우는 ‘태극(음양)의 전사’들을 만났으면 한다. 자극적 언사를 해야 공천에 유리하다는 유치한 구시대 환상은 그만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개혁을 향해 ‘전사’처럼 싸우지만, 상대를 비폭력적으로 존중하는 ‘평화주의자’의 품격이 느껴지는 태극 전사들이 진정한 국가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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