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무죄다

차준철 논설위원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네.” 유튜브 영상에 친숙한 MZ세대의 유행어다. 저도 모르게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추천해주는 대로 따라다니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이들에게 알고리즘은 알아서 내게 안성맞춤인 콘텐츠를 척척 골라주는 고맙고 편리한 존재다. 어쩌면 알고리즘은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아는 것 같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그렇다고 MZ세대가 알고리즘에 종속돼 있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알고리즘을 능동적으로 똑똑하게 활용하거나 역이용한다. 그래서 MZ세대는 ‘알고리즘의 지배자’로도 불린다. 원하는 정보가 있을 때 일부러 해당 분야나 제품의 키워드를 검색해 콘텐츠와 광고까지 두루 섭렵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면서 자기 관심사를 온라인상에 확산시킬 수도 있다. 최근 역주행 신화를 쓴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재기 배경으로 ‘알고리즘의 힘’이 꼽히는 것이 일례다. 한편으로는 알고리즘의 속성을 너무 잘 알기에 ‘검색·시청 기록 삭제하기’를 매번 눌러 알고리즘에 얽히지 않은 정보만 습득하는 이용자도 많다.

이렇듯 알고리즘은 일상 영역에 익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9세기 아랍 수학자 알고리즈미의 이름에서 유래한 수학·전산 용어인데 요즘에는 분야 불문 <○○ 알고리즘>으로 제목을 붙인 책들이 흔하다. 오죽하면 최신 유행가 가사에도 등장할까. “너라는 알고리즘에 빠져버린 거야~.”

혹시나 알고리즘이 원래 무엇인지 헷갈릴 땐 음료수 자판기를 떠올리면 쉽다. 자판기가 투입된 돈의 액수를 감지하고 버튼이 눌린 음료수를 배출한 뒤 거스름돈을 계산해 내놓는 일련의 과정처럼, 주어진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절차·방법·명령어를 순서대로 모아놓은 것을 말한다. 근래에는 컴퓨터·인공지능·빅데이터와 떼어놓을 수 없는 개념이다. 앞서 말한 콘텐츠·제품 추천 외에도 입시나 입사 전형, 신용도 평가, 재범죄 위험 예측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기술 영역이 아니라 일상의 주제가 된 알고리즘은 정치권에서도 호명되며 설전을 불렀다. 일명 ‘포털 알고리즘 공개법’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포털 뉴스 알고리즘의 구성 요소와 기사 배열 기준을 공개하고 전문가 검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전두환 정권 시절의 보도지침을 떠올리게 한다”며 “법이 통과되면 문재인 대통령을 찬양하는 기사가 포털에서 제일 잘 보이는 위치에 오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찬반 양측은 서로 “알고리즘 공부를 더 하라”며 맞서고 있다.

국내 포털 뉴스 알고리즘의 중립성 또는 편향성 시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제가 제기됐다. 2015년에는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뉴스 편집 기준 공개를 주장했고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격렬히 반대했다. 지금과 위치만 바뀌었다. 포털 측은 사람 대신 인공지능의 기사 판단 역할을 늘리는 식으로 논란을 피했을 뿐이다. 그 여파일까. 포털 뉴스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이용자들이 포털에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할 이유다. <무자비한 알고리즘>을 쓴 독일 사회정보학자 카타리나 츠바이크는 “내게 필요 없는 콘텐츠를 제안하는 뉴스피드가 잘못된 내용이거나 음모론이라면 전 사회적인 손해가 막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나 여당이 알고리즘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포털 뉴스 알고리즘의 핵심은 배열 기준과 가중치이다. 이 법이 생겨 그 내용이 공개된다면 편향 시비가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편향을 누가 판단할까. 전문가 위원회를 만든다지만 거기서도 진영이 갈려 또 다른 시비를 낳고 기존의 편파·선정성 문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앞서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제안한,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공영 포털’ 신설론도 공허하다. 지금의 포털이 나쁘니 새 포털을 만들자는 것인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자명해진 사실이 있다. 이 시기에 알고리즘 공방을 재연하는 것은 여야 공히 외치고 있는 언론 개혁을 위한 논의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여도 야도 내 편만 옳고 네 편은 그르다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내로남불’식 주장만 펼치고 있는 것이다. 애먼 알고리즘을 희생양 삼아 편가르기를 하기보다 뉴스의 가치를 알고리즘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타당한지부터 따져보면 좋겠다. 알고리즘 자체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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