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의 시간, 구청장 중심 경제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빌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된 것이 1978년, 32세 때의 일이다. 1992년, 46세에 드디어 그는 미국 대통령이 되는데, 12년 만에 공화당으로부터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준석의 나이를 보니까 35세다. 그가 27세 때 처음 만났는데, 솔직히 그가 대통령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몇 년 지나면 그가 대통령이 된 세상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이후 젊은 지도자를 전격적으로 내세우는 게 보수의 기본 전략이 되었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아주 작은 주 아칸소에서 벌어진 일이 결국 미국 민주당을 구한 사건이 되었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어쩌면 구청장 선거가 아닐까 한다. 광역시에서는 구청, 일반 지자체에서는 시장이나 군수가 기초지차제를 형성한다. 서초구청장인 조은희가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약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전주시장 김승수가 코로나19 국면에서 맹활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나 행정에서 구청장은 가장 아래에 있는 선출직 정도로 낮추어 본다. 도시 지역에서 자기 동네 국회의원이 누군지는 다 알아도, 구청장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통령 중심제의 행정에서 구청은 단순한 복지의 전달체나 기본 행정을 하는 곳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도 많다.

‘밤리단길’이라고 부르는 최근의 핫플레이스에서 주차장 민원이 계속 발생하자 어린이 공원을 없애고 그 자리에 주차장을 놓기로 하였다. 다른 동네는 지하주차장을 만드는 방식으로 대안을 찾는데, 어린이 공원을 없애는 방식의 행정은 저출산 시대에 좀 이상한 행정이다. 이런 게 기초 단위의 행정에서 지역별 차이점이 드러나는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싶다. 기초에서는 여야의 차이보다는 기득권이냐, 개혁세력이냐, 그런 차이가 더 크다. 국민의힘 단체장 쪽에서 잘한 경우도 많고, 밤리단길 주차장처럼 민주당 쪽 단체장이 황당한 일을 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광주나 대구처럼 기초의원들의 견제가 없는 지역은 아무도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박스’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한국의 정치나 행정에서 구청장은
가장 아래의 선출직 정도로 생각
모두 ‘별의 시간’에 신경 세우지만
한국 경제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
그들이 영웅이 되는 시대 필요

내년 3월의 대통령 선거에 가려져 있지만, 내년 6월1일에는 4년 만에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있다. 벌써부터 구청장이나 시의원 선거에 나올 사람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아무래도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을 했기 때문에, 민주당 쪽 단체장이나 의원들도 바짝 긴장하는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전패다.

두 가지 의미에서 이번 구청장 선거는 특별하다.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면서 우리가 받는 재난 문자들은 기초단체에서 온다. 방역은 물론이고 지역 경제도 기본적 행정 주체는 기초단체다. 재난지원금도 기초단체별로 차이가 생겼다. ‘로컬의 귀환’, 조선 시대 ‘시골 사또’ 이후로 지금처럼 한국인들이 기초단체에 대해서 좋든 싫든 자기가 사는 지역이 단체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 적은 없었다.

경제적 의미에서도 그렇다. 지역 일자리나 커뮤니티 비즈니스와 연계된 청년 일자리 정책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하는 것보다 구청장이 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삶의 질 혹은 정주 조건과 관련된 많은 행정들도 동네의 영역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어선 나라들 대부분이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자치가 강한 나라들이다. 스웨덴, 스위스, 독일은 물론이고 미국도 그렇다. 우리처럼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힘이 터무니없이 강하면서 이 정도 경제까지 온 사례가 없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구청장들이 영웅이 되는 구청장 시대를 한번은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김종인 이후로 대통령이 되기 위한 ‘별의 시간’에 모두들 신경을 세우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구청장의 시간’이 아닐까 한다. 경제운용의 핵심 축이 구청장에게로 넘어가는 단계, 우리에게는 그 전환이 필요하다.

MB(이명박) 이후로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일을 하는 것은 뭔가를 건설하는 사람이었다. 대통령이 하는 일은 그야말로 ‘하드웨어’에 관한 일이었다. 그에 비하면 구청장이 하는 일은 시스템의 운용, 소프트웨어에 관한 일이다. 대통령 중심 경제에서 ‘구청장 중심 경제’로 전환하는 것은 우리가 말로만 하던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꾸는 일이다. 주민들의 수많은 아이디어와 의견이 구청 단위에서 모여서 창조적 행정이 되는 순간, 그게 소프트파워가 등장하는 순간 아니겠는가?

우리는 늘 정치에서 대통령과 국회만 보고, 정권 교체만 1번 변수로 본다. 경제는 다르다. 마을과 동네, 그런 기초 단체에서 생겨나는 일자리와 경제가 아직 한국 경제의 잠재력으로 남아 있고, 이걸 움직이는 사람이 구청장이다. 누가 되느냐 보다 무엇을 할 것이냐, 그런 것을 놓고 우리가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한국이 진짜 경제 강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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