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쭉함의 미<味>학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아내가 해물 칼국수를 끓인다고 합니다. 저는 밥이 먹고 싶지만, 아들이 좋다고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메뉴 선정은 아들에게 우선권이 있으니까요. 각종 해물을 넣고 우려낸 맑은 육수에 면을 넣어 끓이던 아내가 깊은 탄식을 내지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들여다본 냄비 안은 난감한 상황입니다. 맑아야 할 국물은 탁해졌고 면은 퉁퉁 불어 있습니다. 평소라면 미리 면을 삶아내고 찬물에 잘 씻은 후 끓는 육수에 넣었을 덴데, 그날따라 서두르다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래도 먹을 만하다 위로하기는 했지만, 아내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밀가루가 사용되는 요리에서는 호화반응이란 것이 일어나는데, 이는 밀가루의 전분이 물을 흡수하고 가열되면서 걸쭉해지는 현상입니다. 전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면 마치 그물과 같은 형상으로, 이러한 구조는 물을 잘 빨아들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거기다 열까지 가해지면 흡수력은 더 커지면서 걸쭉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호화반응이 일어나면 단단했던 전분이 부드럽게 변하기 때문에 식감도 좋고 소화도 잘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몸이 아플 때 먹기 좋은 죽은 이를 이용한 요리입니다. 전분을 넣어 걸쭉해진 탕수육 소스는 돼지고기 튀김에 잘 달라붙어 풍미가 한층 배가됩니다.

그런데 면요리의 경우 호화반응이 너무 지나치면 면이 탱탱 불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호화반응이 일어난 면의 표면은 그 구조가 느슨해져 있기 때문에 내부의 전분 입자들이 쉽게 빠져나올 수 있고, 이는 국물이 탁해지는 원인이 됩니다. 맑은 국물과 쫄깃한 면요리를 원한다면, 면을 따로 삶아내고 찬물에 씻어 표면의 전분을 제거한 후 끓는 육수에 넣어 조리를 완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이와는 정반대로 노화현상이란 것도 있습니다. 호화반응을 통해 부드러워진 식재료가 수분이 증발하면서 딱딱하게 굳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식은 밥이 푸석해지고, 오래된 빵이 딱딱해지는 이유입니다. 바삭한 과자처럼 애초 수분 함량이 적다면 문제없지만, 수분 함량이 높은 경우에는 노화를 억제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요리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먹다 남은 밥은 다시 밥솥에 넣어 보관하는 것입니다. 양갱을 만들 때 많은 양의 설탕을 넣는 것도 설탕과 물이 결합하는 성질을 이용해 수분을 안에 잘 가둬 놓음으로써 노화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온도는 가급적 낮은 것이 좋은데요, 그래야 수분의 증발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노화현상을 이용하는 요리도 있습니다. 튀김옷에 포함된 밀가루가 호화반응을 일으킨 후 노화로 굳으면 단단한 보호막이 형성됩니다. 이 보호막 덕분에 튀김 속 수분은 잘 보존되어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한 식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리란 참 변화무쌍한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조건에 따라 그 모습을 다양하게 바꾸기 때문입니다. 요리마다 선호하는 모습이 다르니 그 세밀한 조절이 요리의 관건입니다. 요리에도 왕도는 없습니다. 쉬운 지름길을 찾기보다는 차근차근 정석대로 진행하는 것이 성공비결입니다. 걸쭉함이 없어야 할 곳에 걸쭉함을 만드는 그런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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