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라면의 비밀은 ‘열 관리’

임두원|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제 아들은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을 좋아합니다. 아내도 라면만큼은 제가 한 수 위라고 인정하죠. 라면을 잘 끓이는 법에 대해 물으면, 저는 ‘중요한 것은 열관리’라고 답합니다. 특히 라면처럼 조리 시간이 짧은 경우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임두원|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임두원|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요리는 일종의 반응입니다. 그리고 반응에는 에너지, 즉 열이 필요합니다. 라면과 수프를 물에 넣는다고 요리가 완성되지는 않죠. 열이 가해져야 물질의 확산, 호화반응, 단백질 변성 등과 같은 반응들이 시작됩니다.

각각의 요리에는 저마다 적절한 조리 온도가 있습니다. 온도가 낮으면 기대했던 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온도가 너무 높으면 엉뚱한 다른 반응들 때문에 요리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온도를 적절하게 맞춘다고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온도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그 온도를 유지하는 시간 또한 중요합니다. 사실 이러한 디테일이 요리의 품질을 좌우합니다. 그만큼 열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인데요, 이때 특히 신경써야 할 것이 바로 그릇입니다. 대부분의 요리는 그릇에 담겨 조리된 후 그 그릇 그대로, 아니면 또 다른 그릇에 담겨 최종적으로 식탁 위에 차려집니다. 요리는 그릇과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요리의 열을 통제하려면 그릇의 선택 또한 중요합니다.

그릇은 재질에 따라 열적 성질이 상이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비열이란 개념이 있는데요, 이는 어떤 물질 1g의 온도를 1도 높이는 데 필요한 열량(㎈)을 의미합니다. 비열이 높은 물질은 온도를 올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열이 필요합니다. 대표적으로 흙과 나무의 비열은 0.4, 유리는 0.2, 철이나 스테인리스는 0.1 정도입니다. 따라서 흙으로 만든 뚝배기가 금속 냄비보다는 비열이 크기 때문에 같은 온도에 도달하는 데 거의 4배의 열이 소모됩니다. 그런데 에너지 소모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뚝배기는 왜 사용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비열이 높으면 온도가 서서히 낮아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열을 유지해야 하는 찌개류 같은 요리에는 흙으로 만든 도기류가 사용됩니다. 된장찌개를 뚝배기가 아니라 냄비에 끓이면 금방 식어서 맛이 없어지는데, 식어버린 찌개는 짠맛이 더 강해지면서 풍미의 균형이 깨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빠른 조리가 생명인 라면의 경우는 보통 금속 냄비를 사용합니다. 만약 뚝배기처럼 비열이 높은 그릇을 사용하면, 가열이 끝나도 남아있는 열로 인해 면이 계속 익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면이 불어터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디테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식탁 위에 차리는 방식에 따라 조리법을 조금 달리하는 것입니다. 끓인 냄비째 차리는 경우라면, 약간 덜 익어 아직은 면이 꼬들꼬들한 상태에서 가열을 중단합니다. 왜냐하면, 냄비에 남아있는 열에 의해 조리가 더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그릇에 옮겨 담을 경우라면 그때는 충분히 익혀 냅니다. 조리가 더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수와 같은 면을 삶은 후 찬물로 씻는 것도 이와 유사한 이유입니다. 면에 남아있는 열을 제거하여 지나치게 익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데, 잔열이 있으면 면의 전분이 계속 반응을 일으켜 표면이 끈적해지고 탄력이 저하될 수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잔열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테이크를 구운 후 일정 시간 레스팅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표면에 집중되었던 열이 서서히 안쪽으로도 들어갈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요리에 있어서도 처음만큼이나 마지막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시작을 잘해도 마무리가 잘못되면 요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 아들에게 저는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불을 꺼도 요리는 계속된단다.”

<임두원|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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