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그러운 가족관계를 넘어서려면

최현숙 구술생애사
최현숙 구술생애사

최현숙 구술생애사

나이가 들수록 편협한 자리로 가다보니 편파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갈수록 편향적인 확신을 하게 된다. 객관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이번 생은 편향된 자리에서 잘 놀다 갈 생각이다.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글쓰기 교실을 해오고 있다. 경제·문화·심리적으로 이제껏 수긍하지 못했던 자신을 수긍하고, 그 수긍을 힘으로 자존감을 회복해 세상과 대면하는 삶을 열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다. 자신을 수긍하기 위해서는 회피해왔던 자신 속 어두움과 상처를 직시하는 것이 출발이라는 생각에 ‘나를 찾아가는’이라는 표현을 넣었다.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생존자, 탈가정 청소년부터 중년들, 정신장애인, 홈리스 등을 비롯해, 외형적으로는 그럴듯한 삶을 살지만 속은 곯아 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이 함께한다.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이유로 세상 속 편협한 자리로 밀려났거나, 혹은 자신 속 어둠을 뒤져보기로 한 사람들이 함께한다. 구술생애사 작업을 통해 만나온 주인공들 역시 경제·문화적 하위계층이다. 하면 할수록 더 또렷해지는 것 하나는, 사람 속 가장 깊은 어두움과 상처는 대부분 어릴 때 원가족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일흔과 여든이 넘어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나와 내 가족은 괜찮았다는 확신이 분명하다면, 그야말로 “웬 떡”을 얻어 사는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 중에는 내면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없어 자신 속 어두움을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패의 상처가 없는 사람들에게 그 계단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자신의 달성에 시비를 거는 자극에 자존감이 뒤흔들려 분노 조절에 실패하곤 한다. 경제·문화적 약자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은 자연재해거나 천재지변이다. 써온 글이나 이어지는 이야기를 타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상처의 원인으로 지목된 소위 가해자가 문제라기보다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문제인 경우가 많다. 가족이야말로 온갖 권력관계가 생애 내내 작동하고 부딪치면서, 구성원 개개인의 심리와 삶에 밀착을 넘어 분리 불가능한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사회다. 가족은 사생활이라는 오해와 사생활은 보호(은폐)되어야 한다는 오해가 겹쳐, 가족 이야기 특히 가족 내 갈등 이야기는 하지 말도록 강요되어 왔다. 가족 내 관계란 애와 증, 덕과 탓이 뒤엉켜 있어 본인 스스로도 해독이 어려우며, 그러다보니 갈등 당사자 간에 터놓고 이야기하며 긍과 부를 발라내어 소통하는 것이 생애 내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천륜이니 인간 도리니 운명공동체라는 통념 때문에 ‘가족이니까!’ 용서해야 하고 미워하지 말아야 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붙들리고,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자괴감을 넘어 죄책감에 빠지게 한다. 이런 상태의 자신과 가족관계를 해결하지 않은 채 멀쩡한 외연을 가장하자니 속이 곯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돈 문제나 빈곤까지 겹쳐버리면 그야말로 징그러운 가족이 되고 만다. 갈수록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빈곤한 사람들에게 가족은 없느니만 못한 경우가 많다.

관계를 회복할 마음이 없거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용서나 화해는 그 자체가 억압이다. 풀어낼 가능성이 보이는 상대나 관계라면 노력할 일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이면 일단 단호해지는 게 필수다. 자신의 삶을 만들기 위해서든 당장 버텨내기 위해서든, 당분간이든 오랫동안이든 단절할 일이다. 욕먹을 각오를 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 혹 각자 성찰도 하고 성숙해져서 다른 관계가 가능해지면, 그때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낳은 아이가 있다면 윗대의 가족 간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 혹 아이를 낳지 않을 작정이면, 내 보기엔 최선이다. 생태 측면에서도 가장 해악인 종이 인간종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헛소리가 적힌 성경을 찢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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