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어’ 정도라도 안 될까

김진우 정치부장

정치권이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들어갔다. 6월 말과 7월 초 대선 구도를 결정할 중요한 ‘정치 이벤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야의 대권 선두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지난주 이틀 간격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주엔 야권 내 ‘윤석열 대안 주자’로 거론되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감사원장직 사퇴 9일 만에 ‘정치 참여’를 알렸다. 더불어민주당은 11일 당원·국민 여론조사를 거쳐 본경선에 오를 후보 6명을 추렸다.

김진우 정치부장

김진우 정치부장

‘슈퍼위크’가 2주 연속 이어진 셈이지만, 대선에 대한 기대감을 키울 수 있을지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지난 2주간의 대선 국면이 기대 이하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선언과 이후 행보부터 그렇다. 정치적 독립성·중립성이 생명인 검찰총장 사퇴 4개월 만의 대선행이 헌정사상 유례없다는 지적은 일단 논외로 하자.

윤 전 총장은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부패·무능한 세력” “국민 약탈” “무도한 행태” 등 날선 표현을 써가며 현 정부를 비난했다. 기자회견장 밖에서 “윤석열은 제2의 박정희” 등을 연호하는 ‘강성 지지층’의 속을 뻥 뚫어주는 ‘사이다 발언’이었을지 모르지만, 윤 전 총장이 탈진보와 중도까지 묶는 ‘압도적 정권교체’를 주장한다는 점에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가 말한 ‘국민통합’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반(反)정권, ‘묻지마 반문’ 정서에 올라타는 것은 쉬운 방식이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거기(분노)에서 끝나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가기 어렵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이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지사에 대한 포문을 색깔론적 공세로 열었다는 점도 유감이다. 윤 전 총장은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았나”라는 이 지사 발언을 두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이라는 광복회장의 발언을 이 지사가 “이어받았다”고 왜곡했고, 대통령이 해명하라고까지 했다.

‘X파일’과 ‘장모 실형’ 등 악재가 이어지자 국면을 전환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편가르기식 이념 논쟁, 철 지난 색깔론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국민의힘도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을 하든지 북한으로 망명하든지”라며 거들었다. 36세 당대표를 뽑으며 ‘변화와 혁신’을 말하는 당이 맞나 싶다.

기실 윤 전 총장이 지난 2주간 보여준 언행은 ‘보수’ 일색이다. ‘탈원전 반대’ 인사들을 만나며 현 정부의 대척점에 섰지만 에너지 정책 구상은 보이지 않았다. 기후변화나 차별금지 등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되레 “제 뿌리는 충청”이라며 ‘충청 대망론’에 기댔다. 국민의힘 바깥 세력까지 모으겠다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것 같다.

여권의 대응이라고 다를까. 이재명 지사는 “국민의힘 역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친일 프레임’으로 윤 전 총장의 비판에 대응했다. 민주당에선 윤 전 총장과 최 전 감사원장을 ‘배신자’ 프레임으로 공격했다. 송영길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발탁 은혜’를 입었던 윤 전 총장이 야당 대선 후보가 된다는 것은 도의상 맞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년, 수백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여권 내 대선 레이스는 경선 연기론을 둘러싼 계파 갈등, ‘조국 흑서’ 저자 김경율 회계사 국민면접관 논란을 거치더니 이 지사를 둘러싼 여배우 스캔들 의혹과 ‘바지 발언’ 논란까지 점입가경이다.

최근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자당 의원들의 단체카톡방에서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했다가 구설을 겪었다. 홍 의원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별개로, 그 말은 능력이나 분수를 모르고 덩달아 남을 따라하는 모습을 비꼬는 의미로 정치권에서 자주 쓰인다.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도 많이 쓴다.

지난 2주간의 대선 국면은 소모적인, 심지어 ‘적대적 공생관계’로까지 보이는 논쟁으로 보낸 느낌이다. 국정운영 능력이나 미래 비전 경쟁은 보이지 않았다. 공정, 불평등 해소, 양극화 해결 등 주요 의제는 뒤로 밀리고 갈라치기 구태가 두드러졌다. 숭어·망둥이·꼴뚜기가 무슨 죄가 있겠냐만, 꼬리를 세게 내쳐 물 위로 솟구치는 숭어 정도라도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Today`s HOT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해리슨 튤립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