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김정택과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김정택은 목사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에 태어났으니 올해 71세다. 그의 삶은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만큼 파란만장하다. 감리교신학대학에 다니던 1977년 벌인 학내 시위는 그를 긴급조치 9호 위반 사범으로 낙인찍었다. 그는 계엄 치하인 1979년 11월25일 서울 한복판인 YWCA 회관에서 열린 ‘위장결혼식’ 집회의 사회를 맡았다. 10·26사건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당한 후 열린 첫 집회였다. 참가자들은 당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앞장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으려는 움직임에 맞서 대통령 직선제, 유신헌법 폐지 등을 요구했다.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그는 국군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백기완 선생 등과 모진 고문을 당했다. 1986년에는 인천 동구 송현동 빈민가에 산마루교회를 세웠다. 노동자, 도시빈민과 함께하는 삶을 걷기 시작했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 4대 총무를 맡기도 했다. 그는 1996년 강화도로 거처를 옮겨 친환경 농법으로 농촌을 살리는 일에 매진했다. 정의를 살리고, 땅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고. 자신을 내던져 주위의 소중한 가치를 살리려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가 25년 만에 인천 도심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인천 동구 화수동 골목에 있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 미문의 일꾼교회) 건물을 ‘살리기’ 위해서다. 교회는 지금 철거 위기에 내몰려 있다.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최근 교회 철거를 포함한 ‘동구 화수화평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을 조건부로 승인했기 때문이다. 조건은 18만998㎡ 면적의 재개발을 하면서 188㎡(57평)의 교회는 철거하는 대신 표지석만 세우라는 것이다. 이 사업이 진행되면 지하 3층~지상 40층 규모의 아파트 단지에 2986가구가 입주하게 된다.

이 교회는 1961년 조지 E 오글 선교사가 설립했다. 미국인 선교사는 1974년 인혁당 사건의 부당함을 알리는 공개 기도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추방당하기도 했다. 교회는 1978년 파업 중이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반대파가 똥물을 뿌린 ‘동일방직 사건’ 당시 조합원들이 피신했던 곳이다. 이 때문에 ‘도산(도시산업선교회)이 들어오면 회사가 도산한다’는 악성 유언비어가 나올 정도로 교회는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다. 1980년대에는 일꾼노동문제자료실을 운영하며 노동조합 결성의 필요성을 알리기도 했다. 노동운동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다.

김 목사는 교회가 헐리면 인천에 남은 마지막 노동문화유산이 사라진다고 판단했다. 그는 교회를 살릴 방법으로 단식을 선택했다. 지난 6월22일부터 시작된 단식은 19일이면 28일째를 맞는다. 그는 교회 1층 예배당에서 미역·다시마를 끓인 물과 생수만으로 버티고 있다.

지난 9일 교회를 찾아갔다. 마침 교계 인사들이 대책을 논의 중이었다. 광주광역시 들불야학의 보존 사례, 서울 영등포구가 나서서 리모델링까지 하는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 사례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는 2010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에서 한국기독교 역사 유적지 제8호로 지정됐다. 설계변경을 한다면 교회가 현 위치에 유지된다고 해서 아파트를 짓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김 목사가 입을 열었다. “재개발이라는 자본의 광풍 앞에서 우리의 힘과 이성만으로는 교회를 지키기 벅찬 게 사실이지만 끝까지 이성에 호소하고 주민들과 함께 대안을 만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했다.

김 목사의 단식은 철거 위기에 놓인 교회를 되살리려는 불씨가 됐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가장 많은 80여개 시민·사회·종교단체가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지난 13일부터는 동조 단식도 이어졌다. 인천시청 앞에서는 연일 피켓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6700여개 개신교회가 속해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도 나섰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성명서를 통해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산업화) 당시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며 무시당하던 노동자들의 안식처였다”면서 인천시와 현 정부가 도심재생사업 차원에서 이번 사안의 해결책을 모색해 줄 것을 요청했다.

맞다. 이젠 권한과 책임 있는 사람들이 사태 해결에 나설 때이다. 인천의 개발과 도시재생을 동시에 책임지고 있는 박남춘 인천시장, 수많은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민원도 해결해 온 이 지역 재개발사업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이성’을 호소하며 목숨을 건 단식을 벌이고 있는 김정택 목사에게 답을 줘야 할 시점이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