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는 어디에서 오는가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송혁기의 책상물림]창의는 어디에서 오는가

요즘 모 방송사의 밴드 경연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출연자 뒷이야기와 탈락자 선정 과정 등으로 시간을 과도하게 끌던 다른 경연 프로그램과 달리, 매회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무대로 시청자의 채널을 장시간 고정시키고 있다. 어디서 이런 보물들이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기량이 뛰어난 출연자들을 보며, 이들이 그동안 들였을 시간을 떠올린다. 음악으로 창의와 개성을 표출하기 위해서는 악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지고 놀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포정의 칼이 뼈와 근육 사이의 공간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것이 오랜 시간 숙련한 기술 덕분이듯이.

우리 사회에서 창의를 강조한 지 오래되었다. 창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자유로움이 없이 창의가 나올 수 없다는 점은 대개 동의하지만 그 자유로움이 오랜 반복에 의한 숙련에서 온다는 점은 간과하기 쉽다. 몸에 익어서 손발이 저절로 움직일 만큼 숙련되어야 거기서 자유로운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처럼, 새로움은 오랜 시간 앞선 이들이 쌓아온 것을 반복적으로 익히고 그 위에 하나를 더 얹는 데에서 나온다.

예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예컨대 한문의 기본을 익히는 데에는 최소 5년의 시간이 걸리고, 번역이나 연구에 종사하려면 10년 이상을 집중해야 한다. 원전을 장악하고 축적된 해석의 역사를 체화한 후 고전과 현대를 이어주는 지점을 찾아내 자신만의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인터넷 검색으로 손쉽게 끌어올 수 있는 정보의 나열과 차별되는 창의적인 글을 쓸 수 있는 힘 역시, 숙련의 시간에서 나오는 것이다.

밴드 경연의 묘미는 합주에 있다. 숙련된 개인이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하되 서로 부딪치지 않고 조화를 이룰 때 창의적인 아름다움에 이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의 기량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영리하게 구성하고 기획하는 일이 중요하다. 숙련의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열정과 즐거움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그걸 기다리고 지원해주며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에는 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멋진 합주를 보며 창의가 꽃피는 문화를 꿈꾸어 보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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