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에 필요한 대통령의 자격

한윤정 전환연구자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으로 일상생활이 쉽지 않다. 전방을 지키던 군인, 가난한 노부부를 비롯해 온열질환으로 쓰러진 이들의 뉴스를 접하며 마음이 아파온다. 그나마 더위는 피할 수라도 있지만, 유럽의 홍수 피해를 보면 언젠가 서울 도심에도 물폭탄이 쏟아져 아수라장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사람들은 늘 날씨 이야기를 하며 살아왔는데 그것이 기후 이야기로 바뀌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코로나19 다음에는 분명 기후위기가 우리 일상을 점령할 것이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작년과 올해 사이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선언을 한 지난해 10월로 시계를 돌려본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발효된 교토의정서 체제가 끝나고 파리협정 체제가 시작되기 두 달 전이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 37개국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파리협정은 참가국이 195개로 늘어났다. 그사이 지구 평균기온과 탄소 배출량은 가파르게 상승했고, 박근혜 정부 때 기후악당국가로 지목된 한국에 가해지는 압력은 상상 이상으로 커졌다. 코로나19 이후 K방역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지도국가가 된 우리에게 2050 탄소중립선언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올해 4월 미국 주도로 유엔 기후정상회담이 열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한국에 국가탄소감축목표(NDC)의 상향조정을 요청했다. 2050 탄소중립선언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에 맞는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아직 밝히지 못한 상황이다. 6월에는 P4G 서울정상회의가 열렸다. P4G는 녹색경제를 중심으로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와 파리협정 이행을 촉구하는 국제협의체다. 문 대통령은 이때 탄소중립기본법 마련을 약속하고 감축목표 설정을 위한 탄소중립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같은 달, 런던에서 G7 정상회의가 열렸다. G7 국가가 아님에도 높아진 위상으로 초청받은 한국에 다시 감축압력이 가해졌다. 우리는 10월 영국에서 열리는 COP26(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설득력 있는 2030년 NDC를 발표해야 한다.

한국의 탄소 배출량은 2018년 7억2800만t으로 정점을 찍었다. 같은 해 IPCC(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1.5도 특별보고서는 2030년 감축량을 2010년 대비 45%로 제안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2030년 4억1700만t까지 줄여야 한다. 당초 문재인 정부의 감축목표는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24.4% 감축이었고, 이는 박근혜 정부가 만든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 즉 5억3600만t을 숫자만 바꾼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계산법과 짐작하기 어려운 수치가 가리키는 지점은 우리가 탄소 감축을 현실적 목표로 삼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목표를 정하더라도 그것을 이룰 의지와 수단이 부족했다. 이명박 정부는 교토의정서 당사국이 아님에도 2009년 스스로 탄소감축목표를 제시해 국제사회의 칭송을 받았지만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석탄발전소 7기의 신축을 결정했다. 늦어도 2050년에는 문을 닫아야 할 발전소를 지금도 짓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심각성을 인식했으나 답을 내놓지 못한다. 탄소 감축 목표와 에너지 공급계획의 마찰로 탈원전 정책은 사방에서 공격받고 있다.

이제 에너지 문제는 짧아도 향후 30년을 좌우할 생존의 문제가 됐다. 소극적으로 보면 마지막 시험의 답안지를 제출할 시점이며, 적극적으로는 1960년대 이후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발전한 경제사회구조의 틀을 다시 짜야 하는 시점이다. 디지털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을 넘어선 이야기로, 문명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전히 갈림길에 있다. 대통령이 약속한 탄소중립 기본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 녹색성장을 넣느냐 마느냐, 탄소감축 목표치를 넣느냐 마느냐의 공방이다. 법제화되고 정책이 정비되지 않은 채 정권이 바뀌면 무효로 돌아갈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의 성패는 전적으로 다음 대통령에 달려 있다. 비유하자면, 트럼프와 바이든의 차이다. 지난 27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들의 기후공약을 밝히는 온라인 토론회가 열렸다. 모두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정책을 이어받는다고 했다. 유력 후보인 이재명·이낙연 후보는 환경부와 산업자원부의 업무를 쪼개서 기후에너지부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짧은 토론회로는 알 수 없지만, 후보 간 차이가 보였고 여전히 녹색성장을 강조하거나 탈원전을 뒤집어 핵융합기술을 지지하는 후보도 있었다. 신기술은 파국을 막기 위한 것이지, 또 다른 성장을 위한 것이면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해 철저한 인식과 철학을 가진 후보만이 대통령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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