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금지가 만능은 아니다읽음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코로나19 확산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8월6일자로 수도권 4단계, 전국 3단계의 거리 두기 조치도 연장되었다. 그리고 지난달 12일 처음으로 수도권 4단계 거리 두기가 시행되었을 때도 그러하지만 지금의 거리 두기 단계하에서 집회는 1인 시위를 제외하고는 허용되지 않는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집회를 2인 이상의 목적을 가진 모임이라고 정의한 것을 고려하면, 수도권 내의 집회는 사실상 전면 금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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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말을 통해 감염되는 코로나19의 특성상 방역을 위해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것을 제한하는 일은 일정 정도 필요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방역조치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집회제한 조치에 대해서는 좀 더 살펴봐야 할 지점이 있다. 바로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집회는 정부의 거리 두기 조치보다 더 강한 규제를 받으며 사실상 집회 자체가 금지되어 왔다는 것이다.

일례로 서울시는 2020년 2월26일 주요 도심에서의 집회를 전면 금지했다. 집회 금지는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되었던 5월에도, 거리 두기가 1단계로 완화되었던 10월에도 변함없이 이루어졌다. 주요 도심 외에서의 집회는 허용되었지만, 이마저도 거리 두기가 2단계일 때 집회에는 10인 이상의 참여를 제한하는 3단계 조치가 적용되는 등 더 높은 제한이 이루어졌다. 거리두기에 상관없이 심각단계 해제 시까지 사실상 집회를 무기한 금지한 지역들도 있다.

최근 원주시의 사례는 이러한 집회만을 특정하는 규제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원주시는 지난달 22일부터 거리 두기를 3단계로 조정하며, 집회에 대해서만은 4단계를 적용하여 1인 시위만을 허용하였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원주시에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표명을 했지만, 원주시는 여전히 시 전역에서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 무슨 집회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집회의 자유는 소수의 보호를 위한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설시한 것처럼, 집회는 차별적 구조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 내기 어려운 이들에게 때로는 유일한 여론 전달의 수단이다. 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아니 코로나19 상황이기에 더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한 원주시의 경우도 그러하다. 원주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서는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한 달 넘게 3차 파업 농성을 하고 있다. 화장실조차 제대로 가기 어려운 열악한 근로환경 등 처우개선을 위해 공단의 직접고용을 요구하기 위한 자리이다. 그럼에도 원주시가 집회에 대해서만 거리 두기 4단계를 적용함에 따라 노동자들의 농성은 이른바 ‘불법집회’로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지난 3일부터는 공단에서 청와대까지 행진을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경찰로부터 가로막힌 끝에 결국 한 명씩 거리를 둔 채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모든 형태의 집회가 금지된다면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대체 어떻게 자신의 생존을 위한 요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19 상황에 왜 집회를 하는가를 묻기에 앞서 왜 이런 상황에서 집회를 해야만 하는지를 묻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질문은 아닐까.

코로나 위기를 모두가 함께 극복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사람들, 말할 자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또 사회가 이를 들어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보장하면서도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분명히 가능하다.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 사회에 대한 헌법적 결단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집회만을 특정한 무조건적인 금지가 아니라 집회의 자유와 방역 간에 조화로운 답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지금 정부와 지자체가 해야 할 결단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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