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 내게로 왔다

최준영 <결핍의 힘> 저자

아침에 눈뜨면 습관적으로 SNS를 본다. 밤사이 누가 어떤 글을 올렸을지, 어제 올린 내 글에는 어떤 댓글이 달렸을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기가 10여년이다. 지치고, 지겨울 만도 한데 되레 새로운 재미에 빠져들고 있다. 근래 들어 유난히 SNS에, 정확하게는 내 담벼락에 책이야기가 넘쳐난다. 왜 그런가 했더니 내 선택이었다. 한때는 유명인 혹은 정치인을 친구 삼곤 했지만 지금은 책동네 사람들이 확실히 주류가 됐다. 그들이 펼치는 책이야기를 읽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다. 새로운 형태의 도서관이다. 사람이 있고, 책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곳이니 영락없는 도서관, SNS도서관이다.

최준영 <결핍의 힘> 저자

최준영 <결핍의 힘> 저자

자주 접하는 책이야기는 세 종류로 나눠진다. 저자가 직접 자신의 책이야기를 하면 절절하다. 이른바 저자마케팅인데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다. “제 책이 나왔어요” 하면, 최소한 ‘좋아요’를 누르거나 축하메시지를 올리는 게 기본 매너다. 구매는 반응을 살핀 뒤 차차 하면 그만이다. 책이야기는 저자만 하는 게 아니다. 내 담벼락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 특히 과학 분야의 사람들이 많다. 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이하 직함과 존칭 생략)과 정재승, 김범준, 김홍표, 정인경, 김병민, 강양구, 이지유, 박재용 등이다. 그들이 추천하는 책이라면 일단 신뢰하게 된다. 덕분에 책값이 꽤 나간다. 근래 많이 추천된 건 <파란하늘 빨간지구>(조천호, 동아시아)였던 듯하다. 덕분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눈을 떴다.

진짜 책동네 사람들이 들려주는 책이야기의 재미는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출판과 서점업계의 이슈와 현실을 자세히 알게 해준다. 편집자의 애환을 들려줄 때면 덩달아 울컥하기도 한다. 출판계의 쉼 없는 맥박 한기호, 인문학 강연계의 중심 김경집, 역사책 출판 외길의 가녀린 강단 박혜숙, 자칭 출판계의 대표미남 이홍, 정치 얘기하며 욱하는 것만 빼면 더없이 부드럽고 재치 넘치는 지식인의 표상일 듯한 안희곤, 이따금 너무나 빈약한 먹거리 사진을 올려서 안타깝게 하는 이권우, 공부책 출판 뚝심 조성웅, 종횡무진 장은수, 성실한 연구자 하남석, 저자마케팅에 진력 중인 길윤형, 빛나는 ‘5쇄 저자’ 문소영, 고작 ‘100쇄 작가’ 강상구, 하여간 눙치는 데는 따라올 자가 없어 보이는 책구라 최보기 등등이다. <비주류의 이의신청>(박홍규, 틈새의시간)과 <기계, 권력, 사회>(박승일, 사월의책), <또 하나의 조선>(이숙인, 푸른역사)을 지체 없이 구매한 건 순전히 이 구간 꾼들에게 놀아난 결과다.

여기까지는 저자 혹은 업계 전문가들의 질펀함이다. 진짜로 하고 싶은 핍진한 책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순서로는 세번째다. 전문가 아니다. 저자도 아니다. 다만 책이 좋아서 책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고급하고 눈 밝은 아마추어들의 책이야기다. 흥미롭고 반갑고 뭉클하고 뜨겁고 날카로우며, 재미있다. 딱 한명 거론하자면, 김미옥이다. 과학 분야 정도가 예외일까, 그 외엔 어떤 분야의 책도 그의 심미안과 감식안을 피해가기 힘들다. 주로 무명작가의 책이거나 작은 출판사의 책을 소개한다. 그냥 소개가 아니다. 일테면 주문을 거는 셈이다. 마녀의 주문과도 같다. 걸려들면 여지없이 구매와 숙독, 감동의 쓰나미에 휩쓸리고 만다.

소설집 <통영>(반수연, 강)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산문집 <단풍객잔>(김명리, 소명출판)과 시집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김용만, 삶이보이는창) 등이 같은 방식으로 장바구니에 담겼다.

“애당초 부재했던 것에 상실이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전의 내가 될 수 없었다.” 소설집 <통영> 가운데의 문장 하나가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이전까지 아버지의 부재는 결핍이 아니었다. <통영>을 읽은 뒤 그때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눈 내리는 어느 겨울날, 통영 앞바다에 서서 응앙응앙 울어버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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