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와 정보 사이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이 문장은 상쾌한 바닷바람과 푸른 하늘을 품고 있습니다. 뭍에 살고 있는 제게 제주도는 수십번을 간다 해도 설렘으로 평상심을 갖기 어렵게 만듭니다. 정해진 일정 후 구도심을 찾았습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도시는 새로이 만들어져 번성하다 확장되어지며 옛 중심은 쇠락하고 맙니다. 오래전 정취를 담고 있지만 관심이 줄어들고 찾는 이가 드물어지면 쓸쓸한 느낌은 낡은 모습과 함께 애잔한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다 없던 살림에 새것을 가지면 기쁘기만 하던 시대가 저물고 옛것을 신기해할 뿐 아니라 그 시절의 정서에 담긴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여유가 자리잡으며 구도심이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오래된 생활의 터전들이 갤러리, 카페 같은 트렌디한 장소로 변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제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서울이나 부산의 오래된 장소에도 동네 이름을 따서 무슨무슨 길이라 부르는 유행이 생겼습니다. 낡은 건물을 부수지 않고 예쁘게 꾸민 업장이 들어서면 신구의 조화라는 진부한 표현을 넘어 무조건 새것만을 만들어왔던 그간 우리네 방식을 돌아보게 합니다.

제 기억 속 ‘~길’로 끝나는 동네의 모든 곳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쇠락한 동네의 환경이 나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인 듯 보여도 막상 복사해서 붙여놓은 듯한 비슷비슷한 인테리어와 새로이 유행하는 똑같은 메뉴들로 가득찬 상점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부산의 유명한 횟집을 지리산 자락의 남원에서 만나는 생뚱맞음과 같습니다. 그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 맥락에 맞는 존재의 의미가 설명되지 않음에 대한 실망은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수고에 비례하여 커지기 마련입니다.

이번에 찾은 곳은 그 대척점에 있었습니다. 옛 극장과 모텔, 목욕탕을 고쳐 만든 미술관, 카페, 호텔과 함께 자리잡고 로컬의 정서를 반영하는 상점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철저히 지역의 산물을 재료로 한 메뉴들로 정성스레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고기와 국수, 야채 등은 물론이거니와 우유라면 제주도 내에서 세 자매분들이 정성스레 키워내고 있는 목장에서 당일 받아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서 제공합니다. 매장 앞에는 도내 엄선한 특산물을 판매하는 것뿐 아니라 만들어지는 단계들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전시합니다.

무엇보다 협력하고 있는 파트너들의 모든 정보가 메뉴판 전면에 자리잡은 제주도의 지도 위에 빼곡히 담겨 있습니다. 칠레산 닭이나 중국산 주꾸미 수준의 관청에서 법으로 강제한 원산지 표기가 아닙니다. 고집스레 자신만의 소중한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생산자 한 분 한 분의 스토리에 위치까지 알리고 있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생애 처음 제주도에 갔을 때 기억이 떠오릅니다. 렌터카를 빌리면 함께 주는 지도책에는 관광지 업소의 정보와 할인 쿠폰이 요란스레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방문한 지도 속 업소에서의 경험은 요란한 간판 아래 뜨내기손님에게 호객하는 영혼 없는 유흥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메뉴판의 지도를 바라보다 그곳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소나 전화번호, 홈페이지의 URL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러하기에 더 좋았습니다. 누구나 검색해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에 호객의 문구가 없어도 충분합니다. 큰 간판이나 선심 쓰듯 할인의 특권을 명기한 유인물보다 중요한 것은 그 업을 이루기 위해 세운 뜻과 자기 업을 사랑하기에 묵묵히 지켜나가는 고집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란스러운 문구는 과장된 홍보이고 차분한 삶의 설명은 소중한 정보라는 것을 누구나 알 만큼 성숙되고 있는 우리 사회는, 모두 각자의 업을 충실히 해야 하는 너무나 명확한 명제로 향하고 있습니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