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악의 시대 건너갈 정치를 찾습니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줄여서 내로남불. 사자성어 같은 이 단어가 오늘날 정치권의 시대정신이 되어 버렸다. 부동산, 자식 교육 등에서 기성 양당 정치인 모두 화려한 내로남불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정의를 외치면서 뒤로는 특권을 부당하게 활용하고, 이를 내로남불이라 비판한 정치인마저 다르지 않았다. 정치권이 앞장서 이 사회의 상식적 가치를 땅바닥에 내던져 버린 셈이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최성용 청년연구자

그런데 이를 내로남불이라고 규정해버리는 순간, 언어가 가지는 힘으로 사고가 특정한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정치인을 내로남불이라 비난한들 그들이 정직하게 ‘로맨스’를 추구하도록 만들지 못한다. 반대로, 로맨스를 피력해온 사람조차 ‘불륜’을 하고 있으니 결국 로맨스는 새빨간 거짓말이고 실은 모두가 불륜을 하더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아가 내로남불은 허상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왜 여성단체는 이 사건(주로 특정 진영에 불리한 경우)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가’라는 종류의 말들은 사실이 아닌 허상이며, 모두가 내로남불을 하고 있으리라 믿는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피차일반이니 누구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누구도 진정성, 선함, 진실, 정의, 평등 따위의 말을 믿지 못한다. 그런 말들은 이기적인 속내를 감추기 위한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에 팽배한 내로남불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려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려는 일마저 ‘위선’으로 만들고, 솔직함을 가장한 ‘위악’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그 연장선에서 ‘공정 현상’은 사회적 상식을 전복한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그저 ‘보상받으려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요구는 ‘노력(시험) 없이 대가를 원하는 반칙’이 되며, 여성들이 성폭력·성차별을 드러내면 ‘계산적 속내를 감춘 부당한 거짓말’로 규정된다. 공정 현상은 사회적 상식인 정의나 평등의 가치를 ‘공정하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상식을 부정하고, 상식적으로 ‘악한’ 말들을 가감 없이 쏟아낸다. 즉 공정 현상은 ‘위선’에 대항해 위악을 상식으로 만들고자 하며, 거기엔 누구도 내로남불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전제가 있다.

기성 양당과 그 지지자들은 이렇게 사회가 붕괴되는 추세에 영합해왔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술자리에서 듣던 차별, 불평등, 혐오를 공정으로 포장하는 위악의 언어는 오늘날 정치 언어로 등극했다. 물론 위악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만들어온 상식의 수준도 후퇴시킬 것이다. 여기엔 몸소 내로남불을 실천해 스스로의 성취를 직접 무너뜨리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정치의 부재가 위악을 번성하게 만든다. 정치가 옳고 그름 없이 특정 대중의 정서를 단순히 반영할 뿐이라면 이는 정치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위악과 상식 중 무엇을 따라야 할지 헷갈리거나, 적극적으로 위악의 언어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위악에 잠식된 정치 언어는 사회를 붕괴시킬 뿐이다. 정치는 대중적 불만과 분노를 공적 언어와 문맥으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대선은 다가오는데, 위악의 마음을 세상에 대한 애정으로 번역할 줄 아는 정치는 어디에 있는가. 정치는 위악의 시대를 건너갈 방주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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