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원 ‘그들만의 잔치’

최서윤 작가

예술인 지원 제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누군가는 자기 좋아서 자기 일 하는 사람들이 왜 수혜자가 돼야 하냐고 묻는다. 혹자는 “지원 제도는 그게 없었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길 찾았을 예술가를 희망고문할 뿐이며, 작품활동만으로 생활이 어려운 창작자는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므로 얼른 그만두는 편이 낫다”는 비정한 말을 하기도 했다.

최서윤 작가

최서윤 작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시대에 상품성을 입증해야만 훌륭한 예술일 리 없다. 후대에 그 가치를 인정받은 예술가들의 숱한 사례가 있고, 설령 ‘상품성’이 부족하더라도 작품에 다른 가치가 내재되었을 수 있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숙고하며 작업할 수 있는 여유와 비축된 힘이 필요하다. 시장의 선택을 받거나 집안 사정이 좋거나 기업 후원을 받은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뜻을 펼칠 기회는 고르게 주어져야 하기에 예술 지원이 요구된다. 다만 공공자금으로 예술인을 지원할 때에는, 해당 맥락에 일반 시민도 고개를 끄덕일 가치가 존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록으로서 가치를 남긴다든지, 공동체 구성원에게 이로운 역할을 한다든지. 최근 공개 비판을 받은 대한민국예술원은 어떠한가?

사실, 부끄럽지만 이런 기관이 있는지 몰랐었다. 적지 않은 국가 세금(약 32억원)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이분들이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꿀 빨고’ 계셨다는 방증일 수 있다. 예술원에서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기회가 자주 있었다면, 그곳에서 밥 먹듯이 거장과 만나 직접 대화하곤 했다면, 회원들이 월 180만원씩 ‘평생(2019년 개정)’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렇게나 황당했을까. 그러면서 2020년 시민을 위해 진행한 사업이, 문학 분과의 경우 작품집 하나 발간한 거라고? 예술원 예산 대부분(20억원)은 회원들의 연금 지급을 위해 쓰인다고? 소속 회원 상당수가 대학 교수 출신이라 월 300만~500만원의 퇴직연금도 받는다면서?

이뿐만 아니다. 이 기관에 들어가는 방법은 30년 이상 예술계에 공로가 있는 사람이 기존 회원 3분의 2의 동의를 얻는 것. 그렇게 한 번 들어가면 연금에 더해 회원들이 돌아가며 받는 ‘대한민국예술원상’ 1억원의 혜택도 노릴 수 있었는데, 논란이 생긴 뒤로는 외부인에게 주고 있다. 그러나 상 받은 외부인들이 회원들의 ‘절친’이라서 또 다른 논란이 생겼다.

이 기관을 알게 된 계기는 이기호 소설가의 문제제기다. 그는 문학지 ‘악스트’에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도래할 위협에 대한 선제적 대응 방안’이란 단편을 발표하고 예술원의 개혁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최근에는 본인 페이스북에 “‘회원의 선출, 임기, 대우’ 이것만이라도 법 개정이 된다면, 예술원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이 귀해졌다. 목소리 내는 예술원의 어른을 목도하기 어려운 걸 보면, 그 안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어른이 존재하긴 하는 건지 의심하게 된다. 하긴, 그랬다면 진작 어르신들께서 먼저 나서서 개혁을 요구하셨겠지? 과연 국민 세금으로 유복한 원로들에게 꿀 주는 게 최선일지, 시민들과 끈적하게 논의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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