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사진가
알밤. 2021. 김지연

알밤. 2021. 김지연

벌써 알밤을 줍는 계절이 왔다. 가까운 산 초입에서 평소에는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숲길로 들어섰다. 철조망이 쳐 있는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묘지 하나가 보인다. 묘지는 철조망이 끝나는 곳에 밤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전망도 그런대로 훤하고 햇빛도 살짝살짝 비친다. 주변에 밤송이가 여기저기 수북했다. 할아버지 한 분이 검은 봉지와 막대기 하나를 들고 그 앞으로 지나갔다. 이미 여럿이 다 뒤지고 간 것이다. 그래도 밤나무 아래에는 한두 개쯤 숨어 있기 마련이다. 주변을 샅샅이 뒤져서 몇 개를 주웠다. 이래가지고서야 다람쥐는 뭘 먹고 살겠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긴 다람쥐는 숨겨놓고 잊어버려서 못 찾아 먹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밤이 싹이 트고 또 자라나보다. 돌아서려는데 밤송이가 툭 하고 떨어졌다. 예쁜 밤 두 개를 얻었다. 맘을 고쳐먹고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밤송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모처럼 멍 때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좋았다. 잠시 후 이번에는 뒤쪽에서 가볍게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낙엽 사이에서 작은 밤 서너 개를 주었다. 밤 줍는 일은 여간 재미가 있는 게 아니다. 시장에서 한 되만 사도 충분히 먹지만 산에서 주운 알밤은 더 달고 맛있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산에 있는 알밤을 다 찾아 먹는 것은 동물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한참을 멍 때리고 있는데 또 한 할아버지가 희고 큰 자루에 알밤을 묵직하게 담아서 들고 지나갔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등 뒤에서 밤송이 두 개가 투-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알밤을 주워서 주머니에 담았다. 바지 주머니가 제법 불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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