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래된 미래

부희령 작가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구도를 두 번째 분단으로 규정하는 특집 기사를 읽고 있다. 한때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 지역에서 살던 때의 기억이 떠올라 감정이 복잡해진다. 20대 후반에 이른바 귀농이라는 것을 실행한 뒤, 30대 내내 농촌에서 살았다. 30가구 정도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식용 닭을 키우는 육계 혹은 버섯이나 사과 재배를 생업으로 삼았다. 집집마다 자급자족을 위한 벼농사와 밭농사를 조금씩 지었다.

부희령 작가

부희령 작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농촌이나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낭만적 환상을 품었을 따름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오래된 미래>에서 묘사한 라다크 사람들의 삶 같은 것을 꿈꾸었다. 가을에 타작을 끝내고 키질하며 노래를 부르는 삶. ‘오, 순결한 바람의 여신이시여./ 오, 아름다운 바람의 여신이시여./ 이 겨들을 가지고 가소서/ 겨들이 알곡에서 떨어지게 하소서./ 인간들이 도울 수 없는 곳에서/ 신들이 우리를 돕게 하소서.’

40대 초반에 서울 근교로 돌아왔다. 귀농에 실패한 원인을 묻는 이들에게 ‘생계를 잇기 어려웠다’ ‘자식의 교육 문제 때문’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쉽게 고백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공동체에 융화되지 못했다. 대부분 혈연으로 얽혀 있을 뿐 아니라, 품앗이 없이 일하기 어려운 농촌에서 공동체는 매우 중요하다. 좋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면 학습이 필요함을 깨달은 계기였다. 희미한 죄책감 없이 떠올리기 힘든 기억이다. 그 무렵 그곳 공동체도 이미 피폐한 상태였다. 새로운 구성원을 환대할 여유가 없었을 테다.

<오래된 미래>를 다시 펼친다. 서구 문명의 개발 모델을 따라가면서 라다크의 전통적 공동체가 급격히 해체되는 과정을 읽는다. 슬프다. ‘우리는 모두 함께 사는 거잖아요’라는 말로 웬만한 분쟁을 해결하던 이들.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자원의 완벽한 순환과 검약으로 부족함 없이 살던 이들. 환금성이라는 가치는 이들의 강한 자부심과 유대감을 열등감과 탐욕으로 바꾼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우리 농촌이 심각한 자기 부정에 이르는 과정도 비슷했으리라 추측한다. 농업은 이제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노동보다 더 못한 대접을 받는 직업이 되었다.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을 직접 만들고 살아갈 집을 직접 지어서 살아간다는 뿌듯함은 머나먼 과거로 사라졌다. 오늘날 사람들 대부분이 일의 기쁨보다는 소비자라는 정체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아간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크게 다르지 않다. 합리적 소비자는 쾌락과 기호를 포기하지 않는다. 경쟁적이고 이기적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다만 성장과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체계가 그런 성향을 드러나게 하고 부추긴다고 믿는다.

자연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상호 보완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믿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든 변화를 퇴보와 희생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죄책감이 아니라 책임감이 필요한 때이다. 아무려나 자연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조화를 이루어간다. ‘인간들이 도울 수 없는 곳에서/ 신들이 우리를 돕게 하소서’라고 노래하던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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